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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 가족들] "8.15상봉 보며 더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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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383회 작성일 04-10-2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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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8월 21일 조선일보


“이젠 더 이상 흘릴 눈물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김태옥(70)씨는 지난 15일부터 시작된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보면서 다시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77년 여름 친구들과 홍도로 여행을 떠났다

사라진 아들 이민규(당시 19세)씨 때문이다. 이씨는 77년 8월 경기도 송탄에서 친구들과 여행을 떠난 뒤 돌아오지 않았다. 김씨 부부는 아들을 찾아 전국을 헤맸지만 아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집안은 엉망이 됐고 남편은 아들을 찾다 8년 전 사망했다.


절망한 김씨에게 97년 뜻밖에 국정원 관계자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김씨에게 아들이 사라진 경위를 묻고 사진을 요구했다. 김씨가 아들 사진을 건네자 그들은 “맞다, 맞아” 했다. 김씨의 아들은 북한으로 납치돼 남파 공작원들을 가르치는 ‘이남화교육관’ 교관으로 있다는 것이었다. “부모라면 내 심정 알 겁니다. 살아서 한 번만이라도 아들을 볼 수 있다면 지금 죽어도 좋습니다.”

95년 7월 중국 옌볜에서 탈북자들을 돕다 납북된 안승운(55) 목사의 가족들도 힘든 세월을 보내기는 마찬가지. 안씨의 딸 지연(24)씨는 “아버지가 납북된 후 정부에 탄원서도 냈지만 담당이 아니라며 책임을 떠넘기기만 했다”고 말했다. 안씨는 “인터넷에 사연을 올리면 몇몇 네티즌이 ‘때가 아니니 자제하라’고 한다”며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고통을 알 수 없다”고 울먹였다.

박금균(33)씨도 애타게 아버지와의 상봉을 기다리고 있는 납북자 가족이다. 수원 22호 갑판장이던 박씨의 아버지 박경원(60)씨는 74년 인천 앞바다에서 어로 작업 중 북으로 끌려갔다. 가장이 납치된 후 박씨 집안은 생계가 막막해졌다. 박씨는 “어머니가 장사를 시작해 3형제를 먹여 살리려 했으나 어림도 없었다”며 “가족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고 지금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박씨는 “여든이 넘으신 할머니는 아직도 아버지를 기다리며 눈물을 흘리신다”며 “정부가 우리 가족 한을 풀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납북자 가족모임 대표 최우영(31)씨는 “자기 나라 사람이 납치됐는데도 두 손 놓고 있는 정부는 전 세계에 우리 정부 뿐일 것”이라고 정부의 무능을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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