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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군포로, 납북자 가족들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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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161회 작성일 04-10-25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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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8월 22일 11:39 문화일보

8.15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보고 온 국민들은 이들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생각하고 같이 울고 같이 안타까워 했다.이들이야 바로 남북 분단의 희생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한 쪽 그늘에는 이들보다 더 큰 희생자들이 있다.바로 국군포로들과 납북자들 그리고 이들의 가족들이다. 다른 이산가족들 가운데는 그들의 자의로 남이나 북을 선택한 사람들도 있겠으나 국군포로와 납북자들 모두는 자기의사와는 달리 강제로 끌려갔거나 전쟁중에 포로가 되어 지금까지 억류된 6.25전쟁과 냉전의 희생자들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탄광이나 산골에서 평생을 감시와 멸시를 받으면서 죽지 못해 살고 있다는 것이 94년 귀순한 조창호씨의 증언이다.국방부 통계에 의하면 돌아오지 못한 국군포로는 약1만9천명이고 이들 중 확인된 생존자는 불과 343명뿐이다.이들에 대한 국가의 책임은 이산가족에 대한 것보다 더 많으면 많았지 적다고 할 수 결코 없다.

21일 이상훈, 유재흥 전 국방 장관, 백선엽, 정승화 전 참모총장, 공군의 김영관, 김종호 전 참모총장 해군의 김용성, 서동렬 전 참모총장, 해병대의 유시종, 공정식 사령관 등 지난 50여년간 우리 국방을 책임졌던 퇴역장성들이 정부청사 앞에서 국군포로 귀환을 촉구하는 집회를 벌린 것은 당연한 주장이고 요구다.

천신만고 끝에 죽음을 무릅쓰고 북한을 탈출한 조창호(70)씨도 이들이 납북임을 증거하기 위해 참석했다. 억울하기는 납북자들도 마찬가지다.돌아 오지 않고 있는 남북자들의 수도 454명이나 된다. ”이제는 더 이상 흘릴 눈물도 남지 않았습니다”라는 피 맺힌 하소연은 김태옥(70)할머니의 절규다.

그는 아들 이민규(당시 19세)는 지난 77년에 살아졌는데 국정원 당국자가 북한에 그의 아들이 살아 있는 것을 알려 주었다 한다. 들도 87년 남북된 어선 동진호의 선장의 맏딸 최우영씨를 중심으로하여 관계 요로를 찾아다니면서 납북자의 조기 송환에 정부가 좀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

정부도 최근에는 이들의 억울함을 이해한 것도 같다. 박재규 통일원 장관은 ”납북자, 국군포로 문제도 2차 남북 장관 회담에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다”는 식의 소극적인 태도는 국가의 책임이라는 측면에서나 국민들의 정서라는 측면에서 볼 때 너무나 거리가 있다. 이 일은 국가가 국가로서 체통을 유지하려면 반드시 해야할 의무다. 정부가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설 때, 국민은 정부를 믿고 정부의 통일 정책에도 진심으로 협력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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