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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사설] 유엔 조사관 앞에 달려온 납북자 가족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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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088회 작성일 13-08-14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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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사설] 유엔 조사관 앞에 달려온 납북자 가족을 보며

 

1971년 1월과 1972년 12월 각각 서해에서 조업 중이던 우리 어선 휘영호와 오대양호가 납북(拉北)됐다. 이들 배에 타고 있다 북으로 끌려간 선원 37명 가운데 18명은 경남 거제시 장목면 농소마을의 이웃사촌들이었다.

 

40여년이 흐른 지난 12일 농소마을 옥철순(81)씨 집에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조사관이 찾아왔다. 유엔 조사관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이 마을 출신 납북자들 가족을 비롯, 서울·부산·울산·수원·밀양에서 찾아온 다른 납북 어부 가족까지 모두 20여명의 노인이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남편과 아들이 납북 전 찍었던 흑백 사진을 확대해 목에 걸고 있었다.

 

옥씨는 유엔 조사관에게 "1972년 납북된 남편을 만나려고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했더니 북이 준 답은 '사망' 단 두 글자뿐이었다"며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야 제사라도 지낼 것 아니냐"며 울었다. 스무 살 아들을 북에 빼앗긴 이간심(78)씨는 "생사도 모른다"고 했고, 남동생이 납북된 김양자(69)씨는 "어머니가 미치셨고, 결국 화병으로 돌아가셨다"고 한탄했다.

 

6·25전쟁 이후 북한이 납치한 우리 국민이 517명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납치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탈북에 성공한 납북 어부 8명이 북의 거짓말을 증명하는 산 증거다. 2년 전에는 '주간조선'이 입수한 평양시민 신상 자료를 통해 납북자 21명이 평양에 살고 있는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납북된 사람들은 이제 대부분 70~80대의 노인들이 됐고, 남쪽 가족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없다. 정부는 납북자 가족이 유엔 조사관 한 사람 앞으로 달려가 매달리다시피 한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납북자 문제 해결엔 대북 협상이나 국제 공조와 같은 정치·외교적 수단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을 끝까지 지키고 보호하겠다는 국가의 흔들리지 않는 의지다. 우리에게 이 의지가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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