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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양61호 25명, 수원33호 14명 70년대 초 끌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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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859회 작성일 14-02-21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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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양61호 25명, 수원33호 14명 70년대 초 끌려가… 북측은 자진월북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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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 가족들 공안당국 감시로 ‘고통의 세월’

20일 시작된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는 1970년대 북한에 납치된 우리 어선의 선원들과 그 가족이 상봉 대상에 포함됐다. 북측은 납치가 아니라 자진월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북측의 최영철(61)씨는 1974년 2월 15일 백령도 서쪽에서 홍어잡이 어선 수원33호에서 조업하다 북한의 함포 사격을 받고 경비정에 의해 납북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납북된 어부는 14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원 11명을 태웠던 수원 32호는 침몰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측의 박양수(58)씨도 납북어부다. 1972년 12월 28일 오대양61호 선원이던 그는 쌍끌이 어선 오대양62호와 함께 서해상에서 조업하던 중 북한 경비정에 의해 끌려갔다. 당시 선원 25명이 납북된 것으로 전해졌다. 오대양호 선원들의 생사여부는 제대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오대양호 선원 전욱표(69)씨가 북한을 탈출, 지난해 9월 국내에 들어왔다. 전씨는 당초 오대양호 납북 선원 명단에 포함돼 있지 않았으나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 대표가 2005년 납북어부 37명이 1974년 북한 묘향산에서 찍은 단체사진을 입수해 공개하면서 정부의 확인작업을 거쳐 납북자로 인정됐다. 앞서 북한 적십자회는 2005년 오대양61호 선원 박두남(당시 38세)씨가 사망한 사실을 대한적십자사에 통보한 적이 있다.

당시 서해상에서 조업하던 우리 어선이 연달아 납북되자 남측에선 북한 규탄 궐기대회가 잇따라 열렸다. 그러나 납북어부들은 제대로 귀환하지 못했다. 정부와 대한적십자사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 때마다 상봉 대상에 전시 및 전후 납북자 가족을 포함시키려 했지만 북측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통일부는 6·25전쟁 이후 납북돼 아직 귀환하지 못한 516명 가운데 선원이 457명(88.6%)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최근 밝힌 바 있다.

남측에 살고 있는 납북자 가족들은 1970년대 공안 당국의 감시 아닌 감시를 받아야 했다. 형 박양수씨를 만난 동생 양곤씨는 사전 인터뷰에서 “가족들이 학교에 마음 편히 다닐 수 없었고, 외국으로 출국하는 것도 안됐다”고 회상했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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