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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 아직도 500여명 못 돌아와… 생사라도 알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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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017회 작성일 14-07-16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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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 아직도 500여명 못 돌아와… 생사라도 알았으면”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

64년이 흘렀어도 6·25전쟁이 남긴 상흔은 아물지 않고 있다.

 

6·25전쟁 당시 비정규 특수부대였던 8240부대(일명 켈로부대)에서 활약하다 전후 납북돼 처형당한 최원모(1967년 납북·당시 57세)씨가 11일 오전 10시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다.

 

고인은 평안북도 정주 출신으로 6·25전쟁 당시 미국 극동군 특수전사령부가 운용했던 8240부대 소속 동키-15부대(일명 켈로 유격백마부대)에서 활약했다. 유격백마부대는 주로 평북 정주 출신으로 구성됐다.

 

고인은 유격백마부대에서 유일한 동력선이던 ‘북진호’의 ‘선박대장’(함장)으로 활약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6월 켈로부대원이자 납북자로서는 최초로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납북자의 국립현충원 안장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인이 납북될 당시 15살이었던 아들 최성용(62)씨는 환갑이 넘어서도 납북자 송환 운동을 펼치고 있다. 납북자가족모임을 이끌고 있는 최씨를 지난 8일 서울 송파구 수협중앙회에 위치한 납북자가족모임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국립현충원에 선친을 모시게 돼 감개무량하고 10년 전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고 김애란씨)와 합장을 하게 돼 더욱 뜻깊다”며 “다만 선친의 유해를 찾아오지는 못하고 위패만 모시게 된 점은 참으로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선친은 북진호를 이용해 백령도의 미군 사령부에 수많은 북한군·중공군 포로를 압송하고 북한에 잡혀 있는 미 공군 조종사 등을 탈출시키셨다고 들었다”며 “선친처럼 군번도 계급도 없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8240부대원들과 유족들에게 정부가 국가유공자로 제대로 예우해 드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씨의 사무실 벽은 60, 70년대 납북된 인사들의 빛 바랜 얼굴 사진과 편지 등으로 뒤덮여 있었다. 최씨의 선친은 1967년 6월5일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조기잡이를 하다가 북한 경비정에 나포됐다. 선친과 함께 북쪽으로 끌려갔던 선원 7명 가운데 5명은 3개월 후 풀려났지만 선친과 다른 2명의 선원은 돌아오지 못했다.

 

선친은 북측의 조사 과정에서 켈로부대원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1970년 반역죄로 처형당했다고 한다. 최씨는 “선친과 같이 끌려갔다가 남파 간첩으로 내려온 선원이 선친의 처형 소식을 전해줬다”며 “정확한 기일을 모르니 합장한 어머니의 기일에 맞춰 제사상을 올리려고 한다”고 씁쓸해했다.

 

6·25전쟁 이후 북한에 납치된 사람은 3000∼4000명에 달한다. 최씨는 “어부, KAL기 탑승자, 학생, 목사 등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납북자가 517명”이라며 “2000년 이후 돌아온 납북자는 고작 9명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중 8명의 탈출을 도왔다.

 

최씨는 “김대중정부가 2000년 북한에 돌려보낸 비전향장기수 63명은 김정일이 준 좋은 집에서 벤츠를 타며 북한주민들의 존경을 받고 산다”면서 “우리는 납북자의 생사확인만 해 달라는 건데 정부가 북한 눈치만 보고 있다”면서 정부의 전향적인 납북자 대책을 촉구했다.

김선영 기자 00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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