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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죽기전 볼 수 있을까"…'통영의 딸' 사건 오길남 박사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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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9,310회 작성일 16-11-11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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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전 볼 수 있을까"…'통영의 딸' 사건 오길남 박사의 눈물


"큰딸 나이 벌써 마흔…北당국, 인도적 차원서 상봉 주선 바란다"

(파주=연합뉴스) 최재훈 기자 = "혜원아, 규원아 살아있느냐? 헤어질 때는 곧 만나리라 생각했는데…"

북한에 억류됐다 숨진 것으로 전해진 '통영의 딸' 신숙자씨의 남편이자 혜원, 규원씨의 아버지 오길남(74) 박사는 지난 10일 힘겹게 입을 뗐다.

가족과 헤어진 지 30년, 백발의 오 박사는 몹시 힘들어 보였다.

임진각을 찾은 오길남 박사(가운데)
임진각을 찾은 오길남 박사(가운데)

오 박사는 이날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을 찾았다. 북한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서 북녘의 두 딸에게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최성용 납북자피해가족연합회 이사장의 부축을 받은 오 박사는 발걸음을 쉽게 떼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한 모습이었다. 

 

"몸 어느 부위가 아프다는 설명이 의미 없을 정도로 온몸이 아파 요즘은 매일 누워있다"는 그는 "아이들을 볼 조그마한 희망이라도 있어야 살 텐데…"라며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면서 "그때는 무슨 환상에 사로잡혔던 건지 나 자신에 속았다"고 했다.

오길남 박사는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한 후 1985년 독일 브레멘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해 오 박사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다. 유럽을 거점으로 활동하던 북한 공작원에게 포섭돼 가족과 함께 월북한 것이다.

"나의 경제학 지식이 남북 관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쓰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북한에 갔는데 모두 허구였습니다." 오 박사의 목소리에는 회한이 담겨 있었다.

눈물을 훔치는 오길남 박사
눈물을 훔치는 오길남 박사

잘못한 선택임은 북한에 들어간 직후 깨달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 듯이 오 박사는 경제학 연구소나 공공기관 대신 공작원 훈련소에 배치돼 훈련을 받았다. 대남 흑색선전 등에 동원된 오 박사는 이후 독일에 공작원으로 파견됐다가 1986년 덴마크에서 가족과 함께 탈출했다.

이후 독일에서 가족과 생활하던 오 박사는 6년간 가족과 함께 남한에 들어오려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결국 1992년 독일 주재 한국 대사관에 혼자 자수하며 한국으로 왔다.

독일에 남아있던 부인 신숙자씨와 딸 혜원, 규원씨는 이후 북한에 끌려가 요덕 정치범 수용소에서 생활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측은 2012년 유엔을 통해 '신숙자씨는 요덕 수용소에서 간 질환으로 사망했고, 두 딸은 살아있으나 아버지를 만나기를 거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오길남 박사가 2011년 공개한 혜원, 규원씨 사진
오길남 박사가 2011년 공개한 혜원, 규원씨 사진

이들의 사연은 북한 정치범 수용소 수용자 구명운동을 하던 단체가 2011년 통영에서 연 전시회 '그런데 통영의 딸이 그곳에 있습니다'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전국적인 관심을 받아 국내외에서 송환 운동이 일어났지만, 2012년 북측의 답변 이후 별다른 진척은 없었다.

오 박사는 당시 "음악가 윤이상씨가 월북을 권유하고, 탈출 이후에도 돌아오라며 협박했다"고 진술해 윤이상씨 유족 측과 진실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오 박사는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윤 선생님은 당시 세계적으로 명망 있는 분이었고, 그 명망이 나의 허황한 믿음을 더 굳게 만든 것 같다"며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통영의 딸' 신숙자씨와 두 딸의 모습. 요덕 수용소에 수용 당시 모습으로 전해진다
'통영의 딸' 신숙자씨와 두 딸의 모습. 요덕 수용소에 수용 당시 모습으로 전해진다

오 박사는 "큰딸의 나이가 벌써 마흔인데, 북한 당국도 제발 인도적 차원에서 내가 죽기 전에 딸들과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 주길 바란다"며 호소했다.

혜원, 규원 자매의 이후 소식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최성용 이사장은 "수용소에서 나와 현재 평양시에서 결혼해 살고 있으며, (두 딸이)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오 박사에게 편지를 전하려다 북한 당국에 발각됐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전했다.

최 이사장은 "우리 측에서 북한에 있는 납북 피해자 가족들의 명단까지 다 가지고 있는데, 북한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며 "남북관계, 정치 문제가 아닌 '천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뿐만 아니라 우리 정부도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출처 : 연합뉴스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11/10/0200000000AKR20161110158200060.HTML?input=1195m


최재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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