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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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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2,832회 작성일 10-12-13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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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있는 명단은 전체 납북자들 중에 현재 가족의 소재가 파악된 경우입니다.
여기에 납북된 가족의 명단이 없으신 납북자 가족들은 연락주십시오
납 북 자 납북년도2004-10-20 납 북 경 위
김 봉 식 해영호71.12.25 71.당시 부산동아수산 쌍 대구리 승선하였으며 조업중 많은 배들이 같이 고기(홍어)를 잡고있었다.해영1,2호2척의배가 조업중 1척의 배가 동력전달장치(수쿠리)로프가 걸려 표류중 한척의 배가 견인하여 항해중 북한경비정이 나타나 사람을 배물칸에 넣어 못으로 나오지 못하게 가두어놓고 납북측에서 직접 항애를 하면서 납북되었음. 북한에 도착하여 모든 선은들은 수용소에 수용중 김봉식은 다른 곳으로 대리고 같으며 그이 후 소식이 없었다. (당시동료 들은 남한으로 돌아왔으며 김봉식외 2명은 북한에서 돌아오지 못함 김봉식은 북한에 수용 중에도 한국에 가면 국제재판을 열 것이다라는 말을 많이 하였음. 그리고 김봉식은 어로장 겸 선장으로 학술이 있었다고 함.
김의준(형) 55세 김태준(동생)47세 오대양호72.12.28 당시 오대양호61,62호에 승선하여 백령도 근해에서 조업중 고기를 많이 잡아(만선)입항 하는 도중 북한 경비정에 의해 형제2명 납북됨.당시 의준이 태준이 모친은 생활이 어려워 의준이 태준이 두 형제를 처음으로 오대양호 배를 타게되었다. 모친은 아들 둘을 북한에 보내고 29년째 혼자서 살아가고 있다, 모친은 생활보호대상자로서 월130,000원 정도 정부에서 지급하여 근근히 생활을 하고 있다. 의준,태준 밑에 딸이 하나 있고 당시 딸은 8살이 였으며 지금은 시집을 가서 살고 있다.
김 용 건 수원32호74.2.15 수원32 ,수원33호 2척이 백령도 근해에서 조업중 (사고당시 기자들이왔서는 수원32호는 북한경비정에 격침이 되었다고 들었음)하지만 조선일보 납북자 가족명단에는 수원32호가 있음.
김 철 주 안영35호 72.12.28 당시 안영35호 승성하였음 (부산선적)그때 당시에 라디오 방송에서 배두척(쌍대구리)작업중 1척은 북한에 의해 격침되었다라고 들었음 사망자는 약20명 예상 99.3.10 조선일보에는 68세 나이로 나와있지만 실나이는 62세임.
김 휘 남 안영35호 72.02.24 당시 안영35호 승선 하였음 (부산선적)그때 당시에 라디오 방송에서 배두척(쌍대구리)작업중 1척은 북한에 의해 격침되었다라고 들었음 ( 본 나이는 58세임)
김 용 철 오대양61호72.12.28 당시 백령도 근해에서 어업중 납치됨.
김 생 림 수원32호 74.2.15 74.2.15수원32호 백령도 근해에서 어로 작업중 납북됨 당시 김생림씨는 선주 겸 어로장으로 일을 했음 (10년전 살아있다라는 소식은 들었음 신문에 발표 한바 있음.)
김 길 오 부길호 68.6.6 연락이 되지않아 확인하지 못함.
김 월 근 수원32호 74.2.15 74.2.15수원32호 백령도 근해에서 어로 작업중 납북됨 당시 친구가 기관장으로 승선하고 있었음, 8년전 안기부 경비실에서 사진을 가지고 오라하여 가지고 같으며 부인은 우리가족을 죄가 없다, 기타 이야기 등을 하였으며 가족사진을 복사해 가지고 같다. (당시선주가 하 인천에 첩부대 근무 자로 있었으며 그리하여 간첩선으로 오인 판단하여 심하게 각 언론 보도가 많았음.)
김 대 곤 천대11호 67.4.12 당시 백령도에서 어업중 북한경비정에 의하여 격침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제3국으로 탈출한 이재근씨 현재 생존해있는 납북명단을 통하여 북한에 생존함을 알았음.
김 태 랑 봉산21호 70.4.29 당시 서해안에서 어업중 행방불명된 것으로 알고있었다 제3국으로 탈출한 이재근 현재 생존해있는 납북명단을 통하여 북한에 생존함을 알았음
김 인 철(50세) 덕수2호 68.8.7 당시 주문진 해양고등학교에 재학중 동해에 오징어잡이 실습생으로 나가 납북됨.(당시 나이는 17세였음)
김 계 홍 안영35호 72.2.4 당시 안영35호 승선하였음 (부산선적)그때 김계홍은 선장이였으며 당시 35.36두척이 어업중 주위에 배들에의하면 다른배에 불이났었고 35.36호는 납북됨.
김 룡 봉 종진호 68.4.27 당시 동해 대진근해 어업중 7명 승선하였으며 북한에서 3명은 남한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사람의 말에 의하면 납북당시 한방에서 자고있데 북한사람이 왔어 모시고 감.
김 흥 록 창영호 68.4.17 당시 그 배는 머구리 배 였으며 강원도 고성군 간성면 고등학교 1학년때 일요일인데 친구가 사람이 없다고 대신 배를 가자고 해서 대진섬 주위 휴전선 근처에서 어업중 납북됨 (고성군 간성면 수사과에서 납북된 것은 알고있었으며 납북자 (김흥록)이 사진을 달라고 하여 엘범에 있는 사진을 주었다.
김 두 선 안영36호 72.2.4 당시 안영36호 승선 하였음 두척이 어업중 납북이 되고 배에 불이 났었다고 들었음
김일봉
부르는명(김일필)
안영35호 72.2.24 김일봉씨 가족과 연락은 5촌이며 당시 남해에서 생활을 하다가 부산에서 현재 거주함 김일봉의 동생이 있으며 동생이름은 김일수 이며 남해군 읍에 살고있음.
김 일 만(49세) 오대양61호72.12.28 당시 오대양호61,62호에 승선하여 백령도 근해에서 조업중 고기를 많이 잡아(만선)입항 하는 도중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됨. (모친71세 권득리씨. 당시에 아들 나이는 17세 동생이 큰형은 서울에 살고 있고, 3째 누나 , 4째 여동생 5째 6째, 자식들이 살고 있다.
김 옥 준 태영호 67.5.29 당시 돗단 배였으며 7명의 선원이 승선하고 이었으며 북한에 납북되어 5명은 남한으로 돌아오고 2명 북한에 남았음.
김 학 래 창영호 68.4.17 당시 머구리배 해삼을 잡으로 거진근해 어업중 포탄 발사로 배가 격침 당해서 당시 소문으로는 배가 침몰되었다고 소식을 들음.
김 종 옥 해영호 65.11.30 당시 속초에서 오징어 배에 승선하여 조업중 납북됨 이후 중앙정보부에서 납북된 사람에 대해서 조사 하고 정보부에 납북되었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경찰서 등에서도 조사를 함.
김 상 대(58세) 휘영37호 71.16 경남 장승포 능포에 거주 예상됨. (김상대씨의 형제는 7명정 도 됨) 아들이29세 됨.
김 홍 균 대성호 68.5.23
김 병 도(50세) 대영호 73년 당시 꼬막배 였고 충무 선적 충무에서 출항을 하여 당시 충남 안흥에서 형님에게 편지가 왔다. 정부에서 발표한 명단에는 없다. 탈북한 이재근의 증언에의해 김영두를 알게됨. 김영두씨는 선주에 아들 이였으며 일반 선원이 였고 김병도는 당시 기관장 이였다. (당시 주위에서 작업중인 선박의 사람들에 의하면 작업을 철수하자 하니 우리는 한번더 하고 갈 것이니 먼저 가세요 하였으며 이후 대영호는 연락이 되지 않았음, 당시 선주측은 배가 침몰하였다 하여 보상을 요구하기도 하였음. (당시 어머님이 딸을 대리고 해경에 잡혀가 해경에서 어머님이 병도가 군에 가야하니 아들을 내어나라 하니 통영해경에서 아들을 만나게 해주겠다 하였다.)
김찬덕/춘덕 휘영37호 당시 납북된 배는 저인망이었으며 당시 38호 선원들에 의하면 현장에서 휘영37, 38호 두척에 배가 조업중 37호가 기관고장으로 표류중에 바다물(조류)이 흐르는 방향이 북한쪽으로 많이흐르는 상태에서 38호는 북한쪽으로 많이 밀려같으며 37호는 남한 쪽으로 있었다고함, 북한 경비정이 오자 37,38호는 항해를 하여 남쪽으로 도주하는중 북한경비정이 총을 쏘아 37호 배에있는 GAS통이 총알에 맞아 폭발 북한경비정에 납북음, 38호는 도주하여 한국에 해군 의해 인천항에 입항하였다, 당시 입항한 38호는 배 옆에는 포탄을 3개나 맞아 구멍이 났고 또한 선장실은 총알을 맞아 구멍이없을 정도였다고 함.
김 옥 률(47세) 오대양호72.12.28 당시 오대양호61,62호에 승선하여 백령도 근해에서 조업중 고기를 많이 잡아(만선)입항 하는 도중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됨. 탈북자 이재근의 증언에 의해 납북됨을 알았음. (어머니 혼자 살고 있음)
김 순 근(59) 동진호87.1.15 87년도 당시 납북됨.
김 상 섭(50) 동진호87.1.15 87년도 당시 김만철 망명하여 가족이 돌아오면서 북한에서는 김만철씨 가족과 동진호 선원을 주고 받자고 북한에서 협상의 조건을 걸었고 정부는 인도주의 차원에서 할수 없다고 하면서 선원들 돌아오지 못하였다.
김 천 구(김 천 주) 오대양61호 당시 오대양호61,62호에 승선하여 백령도 근해에서 조업중 고기를 많이 잡아(만선) 입항 하는 도중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됨.
김 종 원(78세) 72.12.28 오대양61호 당시 오대양호61,62호에 승선하여 백령도 근해에서 조업중 고기를 많이 잡아(만선)입항 하는 도중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됨.
강 소 동(59세) 오대양호72.12.28 당시 오대양호61,62호에 승선하여 백령도 근해에서 조업중 고기를 많이 잡아(만선)입항 하는 도중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됨
강 희 근 동진호87.1.15 87년도 당시 김만철 망명하여 가족이 돌아오면서 북한에서는 김만철씨 가족과 동진호 선원을 주고 받자고 북한에서 협상의 조건을 걸었고 우리정부는 인도주의 차원에서 할수 없다고 하면서 선원은 돌아오지 못하였다.
공 순 경 안영35호 72.2.4 형수인 할머니가 기역이 나지 않음
남 복 이 천대11호 67.4.1 당시 부산선적 이였으며 승선 선원은 12명이 였으고 사고후 부산에 선주회사에서는 배에 행방을 모르겠다 라고 이야기 하고 당시 선주측에서는 침몰되었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동 현 순 안영35호
문 호 식(54세) 풍복호 67.6.5 당시 16세였으며 안강망 배에 타고 연평도 근해에서 납북됨, 경식은 "화장"일명(식사당번)으로 일을 했으며 (당시에 풍복호 에는 7명 선원이 승선하였으며 선주와 경식은 북에서 돌아오지 못하였다. 당시 남한으로 온 5명의 선원들 이야기는 3개월간 북한에서 생활하면서 경식을 보지 못하였고 남으로 돌아올 당시(출항직전)에 북한 해주 항에서 경식을 보았는데 그때 당시에 남으로 가는 선원들에게 나도 같이 가자고 경식이 몸부림을 치면서 울었지만 북한측 사람이 붙잡고 가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북한에서 돌아온 선원들은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를 받음.
박영송(52세)(박영종 오대양호72.12.28 당시 오대양호61,62호에 승선하여 백령도 근해에서 조업중 고기를 많이 잡아(만선)입항 하는 도중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됨
박 두 남(67세) 오대양호72.12.28 62호선장 당시 오대양호61,62호에 승선하여 백령도 근해에서 조업중 고기를 많이 잡아(만선)입항 하는 도중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됨
박 두 현67 오대양호62호
72.12.28
백령도 근해에서 고기잡이중 배2척이 모두 납북됨 당시 오대양호61,62호에 승선하여 백령도 근해에서 조업중 고기를 많이 잡아(만선)입항 하는 도중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됨
박 상 국 안영35호72.2.24 당시 안영35호 승성하였음 (부산선적)그때 당시에 라디오 방송에서 배두척(쌍대구리)작업중 1척은 북한에 의해 격침되었다라고 들었음 사망자는 약20명 예상.
박 복 만 72.2.24 (당시 승선한 배에서 갑판장 이였다고 함)
박 길 윤 휘영37호71.1.6 당시 납북된 배는 저인망이었으며 형님도 납북전 위영37호 기관장으로 승선하였다 회사와 모든 조건이 맞지않아 그만두고 난후 1년후 납북됨, 납북당시 38호 선원들에 의하면 현장에서 휘영37, 38호 두척에 배가 조업중 37호가 기관고장으로 표류중에 바다물(조류)이 흐르는 방향이 북한쪽으로 많이흐르는 상태에서 38호는 북한쪽으로 많이 밀려같으며 37호는 남한 쪽으로 있었다고함, 북한 경비정이 오자 37,38호는 항해를 하여 남쪽으로 도주하는중 북한경비정이 총을 쏘아 37호 배에있는 GAS통이 총알에 맞아 폭발하기도 하였음, 38호는 도주하여 한국에 해군 의해 인천항에 입항하였다, 당시 입항한 38호는 배 옆에는 포탄을 3개나 맞아 구멍이 났고 또한 선장실은 총알을 맞아 구멍이없을 정도였다고 함.
박 양 수(55세) 오대양호 72.12.28 당시 오대양호61,62호에 승선하여 백령도 근해에서 조업중 고기를 많이 잡아(만선)입항 하는 도중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됨
박 영 석 오대양호 72.12.28 오대양호61,62호는 그때 당시에 백령도 근해에서 고기잡이중 납북됨 박영석씨는 61호 기관장으로 승선 하였음.
박 광 현 동진호 87.1.15 87년도 당시 김만철 망명하여 가족이 돌아오면서 북한에서는 김만철씨 가족과 동진호 선원을 주고 받자고 북한에서 협상의 조건을 걸었고 우리정부는 인도주의 차원에서 할수 없다고 하면서 선원들은 돌아오지 못하였다.
박 경 원 수원32호74.2.15
박 동 순 휘영37호 71.1.6 당시 정부에 문의 (정보부) 폭격을 당하여 배 어느 부위에 불이 났다는 것만 이야기를 들었음.
박 천 향 휘영37호 당시 정부에 문의 (정보부) 폭격을 당하여 배 어느 부위에 불이 났다는 것만 이야기를 들었음.
박 휘 만 봉산22호 70.4.29
박 종 업 가덕호68.7.10 연락이 되지않아 확인하지 못함.
박 재 수 해군방송선 아이2정 70.6.5 진해 해군소속 군복무중 백령도 근해에서 납북됨
신 태 용 안영35호 72.2.24 선원으로 승선을 하였으며 그 당시 부산선적 4척이 한선 단으로 어업을 했고 다른 분들은 회사에서 침몰된 것으로 확인.(이후 중앙 정보부에서 확인차 왔음)
서 석 기(62세) 오대양호72.12.28 당시 오대양호61,62호에 승선하여 백령도 근해에서 조업중 고기를 많이 잡아(만선)입항 하는 도중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됨
서 영 구 오대양호
서 득 수 신진1호 73.7.27 인천에서 백령도로 항해하여 오는중 월래도 근방에서 새벽에 사격으로 포격 당하여 격침된 것으로 알고있으나 신문등에 의하면 납북자 명단에 있음.
송 옥 천 휘영37호
이 재 명(64세) 오대양61호72.12.28 당시 오대양호61,62호에 승선하여 백령도 근해에서 조업중 고기를 많이 잡아(만선)입항 하는 도중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됨.
“72년 12월 당시에는 납북되었다는 말과 또는 침몰되었다는 말 들이 이었으며, 선주는 회사가 부도처리 도망을 갔었으며 가족들 모두 힘들게 생활해 왔음, 최근에 탈북한 이재근씨의 증언에 오대양호 선원중 김옥률이라는 사람이 북한에 살아있다는 말을 통하여 납북됨을 확인.
이 홍 섭 안영36호 27.2.4 당시 안영35호 승선하였음 (부산선적)그때 김계홍은 선장이였으며 당시 35.36두척이 어업중 주위에 배들에의하면 다른배에 불이났으고 35.36호는 납북됨.
이 공 희 오대양61호72.12.28 당시 오대양호61,62호에 승선하여 백령도 근해에서 조업중 고기를 많이 잡아(만선)입항 하는 도중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됨.
이 재 근 봉산22호 70.4.29 납북자중 최초로 납북어부로서는 제3국으로 (중국) 탈북하여 현재 부인,아들과 한국에 있음.
이 동 우 복순호 69.5.10 당시 백령도 근해에서 어업중 행방 불명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제3국으로 탈출한 이재근 현재 생존해있는 납북명단을 통하여 북한에 생존함을 알았음
이 종 윤(72세) 보승2호 64.3.1 당시 이종윤씨는 선장으로 승선하였음.
이 기 하 천광호 75.8.8 당시 그 배에는 31명이 승선하였으나 한명만 납북되었다고 하였고 또 어선명도 다르게 나왔었다, 당시일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으나 97년도에 제3국으로 아버지가 살아있다는 생사확인을 하게되었고 알고보니 당시 그 배에는 31명이 승선했으며 30명 빠져있었다 그래서 25년 만에 언론에 처음으로 이런 사실이 공개됨. 현재 납북자 가족으로 등록됨.
이 태 수 금윤호 67.11.3 당시 강원도 거진항 출항하여 연근해서 어업중(명태잡이)오후3시경 납북되었다고 주위에 함게 어업중인 뱃사람들에게 사고사실을 들었다 승선중인 선원은 7명으로 생각 된다.
이 선 주 덕산호 68.6.6 나이가 많은 관계로 확인이 되지 않음.
이 동 우 69.5.10 당시 사고경위를 기역하지 못함.
이 민 교 나이가 많은 관계로 이야기를 하지못함.
이 선 일 승용호 67.5.28 연락이 되지 않음.
이 재 환 유학생 87.7.20
안 승 운 목사 95.7.24 안 목사는 중국에서 선교 활동 중 북한에 납치됨.
오 원 섭(75세) 어성호 67.11.3 강원도 고성군 동해 연근해 어업중 납북됨/ 그 당시 배에 승선자는 6명 이었고 5명은 남한으로 돌아오고 납북자 (오원섭)은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온 4명의 선원들에 의하면 북한에서 3일까지는 같이 있었으며 남한으로 돌아오기 3일후 보지를 못함. 현재 (처) 는 딸2명 아들2명과 살고 있다 막내아들은 유복자임.
오 성 재 신진호
68.5.9
모친이 나이가 많아 정확한 사고경위를 알지 못함.
유 경 춘(75세) 오대양61호
72.12.28
당시 오대양호61,호에 선장 이였으며 승선하여 백령도 근해에서 조업중 고기를 많이 잡아(만선)입항 하는 도중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됨.
윤 무 철 종진호 68.4.27 당시 선장으로 승선하였으며 강원도고성군 대진 재진섬 근해에서 조업중 납북됨,
임 태 환(본명 임대환) 수원33호 74.2.15 수원32,33호 쌍 대구리 승선 백령도 근해에서 어업중 수원33호는 북한경비정에 격침 당했으며 수원33호는 북한에 납북됨.
임 규 철 종진호 68.4.27 당시 선장으로 승선하였으며 강원도고성군 대진 재진섬 근해에서 조업중납북됨. 현재 여수시에 있음.
임 판 길 봉호
위 춘 환 안영호35호 72.2.24 당시에 배가7척으로 구성이 되어있었으며 배를 지은지 첫 출항인지 2번째출항인지 기역이 나지 않고 당시에 7척에 배가 전부 납북이 되었다고 이야기를 들었음.
정 세 률(79세) 휘영37호 71.16 당시 정세률은 기관장으로 승선하였음, 정완상은 기관장보조로 승선함,
정 완 상 (50세) 휘영37호 71.16 당시 정완상은 식사당번 (일명”화장”)을 하였음.당시 납북될 때 나이는 19세 정완상의 부친은 95년에 별세함. 정완상을 사망신고를 하기 위하여 각 기관에서 확인서를 요구하니 인천 해경에 가서 확인서를 해오라 하여 당시 인천 해경에서 당시의 사건에 관에서는 모르겠다고 하며 안기부로 가라하여 안기부로 가니 직원한명이 욕설을 하면서 확인할 수 없으니 집으로 가던지 아니면 정부조합청사로 가라 하여 가족은 정부종합청사에 가서 민원을 내어 실종신고를 하라 하여 00사무소에 가서 실종신고를 하고 충무 지방법원에 실종신고를 받았다. 사고이후 에도 이상한 남자들이 왔서는 집에 사진을 찍고 하였으며 당시 동내에서 동내로 이사를 하였는데 이사직후 가족들이 사진등 조사를 하였음. 완상씨가 젊었으므로 감시를 많이 받았음.
정 수 봉
정 유 석 수원33호 74.2.15
정 원 석 해군방송선 아이2정 70.6.5 진해 해군소속 군복무중 백령도 근해에서 납북됨
정 건 목 오대양61호 오대양호에는 당시31명이~32명으로 추정됨 .
정 도 평(55세) 오대양호 72.12.28 당시 오대양호61,62호에 승선하여 백령도 근해에서 조업중 고기를 많이 잡아(만선)입항 하는 도중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됨. 사고후 부산선주집에가니 선주동생이 왔어는 북한에 납북되었다고 함 3개월후 돌아올 것이다라고 말을함 가족측에서 납북되었다는 확인서를 써달라 하였음.
정 한 수 (72세) 덕수2호 68.8.7
정 일 남 동진호 87.1.1 87.1.15백령도 근해에서 조업 중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치됨 당시 동진호27호 어로장 이였으며 그당시 김만철씨 일가족이 탈북 하는 사건이 발생 그 사건으로 돌아오지 못함.
정 형 래 오대양호 72.12.28 백령도 근해에서 고기잡이중 배2척이 모두 납북됨
전 우 포 (55세) 오대양호61호 72.12.28 당시 오대양호61,62호에 승선하여 백령도 근해에서 조업중 고기를 많이 잡아(만선)입항 하는 도중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됨 (정부에서 발표한 명단에는 없음) 현재 통일부에 납북자 명단에 등록되어 있음.)
전 도 민 수진호 68.11.8
조 인 우
본명 조순우
신진1호 73.7.27 인천에서 백령도로 항해하여 오는중 월래도 근방에서 새벽에 사격으로 포격 당하여 격침된 것으로 알고있으나 신문등에 의하면 납북자 명단에 있음
조 순 래 신진1호 73.7.27 인천에서 백령도로 항해하여 오는중 월래도 근방에서 북한경비정에 의해 격침된 것으로 알고있음
진 정 팔(62세) 천대11호 67.4.1 연락이 되지않아 사고경위를 알수없음.
장 면 신양호 68.7.2 어선으로 납북됨
장 기 영 Kal기 69.12.11 강령에서 서울 가는 중 사고를 당함.
장 종 윤 수원33호 74.2.15 당시 백령도 근해에서 어업중 납북됨 인천에 선주측에서 납북되었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전 해 렬(52세) 방송선 아이2정 70.6.5 당시 해군 군인으로 승선중 납북됨 ( 86년 안기부에서 찾아와 살아있다)
추 영 수 동진호 87.1.15 87년도 당시 김만철 망명하여 가족이 돌아오면서 북한에서는 김만철씨 가족과 동진호선원을 주고 받자고 북한에서 협상의 조건을 걸었고 정부는 인도주의 차원에서 할수 없다고 하면서 선원들은 돌아오지 못하였다.
차 승 민 고교생 77. 홍도에 여행중 북한 공작원에게 납치됨
최 창 의(54세) 태영호 67.5.29 당시 2명만 북한에서 남게되고 나머지 3명은 남한으로 돌아 옮.
최 영 철 수원33호 74.2.15 당시 인천에 소속인 회사에서는 수원32호는 북한에 의해 격침 되었다라고 하였지만 99.3.10조선일보 명단에는 32,33호 모두다 납북어부로 되어 있음.
최 명 환 천대11호
최 종 석 동진27호 87.1.5 87년도 당시 김만철 망명하여 가족이 돌아오면서 북한에서는 김만철씨 가족과 동진호 선을을 주고 받자고 북한에서 협상의 조건을 걸었고 정부는 인도주의 차원에서 할수 없다고 하면서 최종석씨는 돌아오지 못하였다.
최 종 등
본명(최종득)
(60세)
천대11호 67.4.12 당시 쌍대구리 승선하여 일을 했으며 그때 행방불명 되었다는 이야기만 들었음,. 현재 형수가 있고 조카가 그때당시 기억을 하고 있음.
최 원 모 풍복호 67.6.5
황 원 Kal기Mbc기자69.12.11
황 영 식(80세) 휘영37호 71.16 당시 정부에 문의 (정보부) 폭격을 당하여 배 어느 부위에 불이 났다는 것만 이야기를 들었음, 당시 황영식은 일반선원으로 승선을 하였음.
황 명 삼(58세) 대복1호 6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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