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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진 납북어부 ‘30년만의 귀향(歸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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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강민
댓글 0건 조회 159회 작성일 21-09-09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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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진 납북어부 ‘30년만의 귀향(歸鄕)’

신문, 방송들의 열띤 취재 경쟁[2005. 08. 17]

 

납북여부 김명섭씨의 귀향을 환영하는 프랭카드가 그의 고향집 도로에 걸리기도 했다.

름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12일 오후 1, 강릉시 주문진읍 교항10리 좁은 골목에 들어서자 <환영 납북 천왕호 선원 고명섭 귀향>이라는 프랭카드 2개가 걸려있고 마을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1975817일 오후 230, 오징어잡이를 나갔던 주문진 선적 천왕호 선원 고명섭(62)30년만의 탈북으로 이날 귀향하는 날이었다. 둘째아들 고만식(47)씨는 서울에서 탈북한 형을 만나 함께 고향으로 모시고 오는 중에 있었고 노모 김영기(84)씨와 형수 및 막내아들 만용(44)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벌써 한겨레신문과 SBS기자가 노모와 막내아들을 상대로 취재를 하고 있었으며, 형수는 접대를 위해 음식을 장만하고 있었다.

만용 씨는 1975년에 고기잡이 나가 풍량에 실종된 줄 알고 있다가 1978년 백령도에 있는 정모씨의 누나를 통해 납북된 둘째 형 명섭씨가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받고 납북된 사실과 형의 생존을 알았다고 밝혔다. 납북된 천왕호에는 주문진에 주소를 둔 31명의 선원이 승선했는데 이 편지로 인해 선원기족들에게 납북사실이 전해졌고 얼마간의 경제적 도움을 주었다고 했다.

가족들은 20021차로 명섭씨와 가족을 모두 탈북시키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올해 3월 납북자모임 최성용 대표의 주선으로 혼자 중국으로 탈북했다고 했다. 32세에 납북되어 결혼 후 평북 성천에서 양계장 노동자로 생활하며 두 남매를 둔 명섭씨는 북에 두고 온 가족 때문에 한국으로의 결심을 굳히는 망설였으나 노모와 형제들의 설득으로 결국 30년만에 귀향을 택하게 되었다고 했다.

어머니 김씨는 아들이 납북된 이듬해인 1976년에 아버지가 별세하면서 아들 이름을 부르며 눈을 감지 못했었다고 회고하면서 명절 때 부친 제사상에 아들몫의 밥 한그릇 올려놓았다고 했다. “가슴에 묻어 놓고 파도만 치면 죽었는지 살았는지 걱정으로 지샜다고 했으며, “가족이 몽땅 나왔으면 춤을 추겠는데...”하면서 아쉬움을 표했다.

2시가 가까워지자 신문, 방송기자들이 모여들어 납북경위, 가족근황 등에 대한 질문이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으며, 이 때 납북자모임 최성용 대표와 피납탈북인권연대 도희윤 사무총장, 첫 번째 탈북어부 이재근(현 평화통일 탈북인 연합회 한마음복지회 대표이사)씨가 도착했었다. 이어 230여분 납북어부 명섭씨가 동생 만식씨와 부천에 사는 여동생과 함께 도착하자 어머니는 집밖에 나와 아들과 뜨거운 포응과 30년만의 상봉의 기쁨을 누렸다.

30년만에 돌아 온 고향집 어귀에서 30년만에 어머니와 뜨거운 포응으로 해후하고 있는 납북어부 고명섭씨.

안방에 앉자 노모는 아들을 향해 "다행이네, 다행이네..."라고 말끝을 잇지 못했고, 명섭씨는 어머니 손을 잡으며 "30년동안 고향과 가족생각을 안해 본 적이 없다"라며 그동안의 심정을 털어 놓았다. 이날 강릉지역 날씨가 섭씨 34도를 웃도는 무더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이들 모자(母子)의 상봉 장면을 취재하기 위해 서울에서 내려온 조선, 동아, 중앙 등 중앙 일간지 기자를 비롯해 강원일보, 도민일보 및 KBS, YTN, MBC기자와 카메라맨 20여명의 열띤 취재로 인해 가족들은 물론 취재기자들까지 비지땀을 흘렸다.

명섭씨는 어머니를 만나보니 앓던 병도 다 나은 것 같다라며, 30년만의 귀향과 가족상봉의 감회를 전했으며, 맥주잔을 나누며 30년만의 귀향과 가족상봉의 기쁨을 자축하기도 했다. 이날 명섭씨의 귀향에는 함께 승선했던 천왕호 선원가족 20여명이 찾아왔었는데 21살의 이해운씨의 모친 손봉여(79) 할머니는 고등학교 학비를 벌기 위해 아들도 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울음섞인 하소연을 했으며, 사무장이었던 최우길씨의 부인도 울음을 참지 못하고 목메여 하기도 했었다.

납북자모임 최성용 대표는 명섭씨가 납북어부 중 네 번째 이고 강원도에서는 처음이라면서 천왕호의 선원 31명 중 10여명은 사망하고 20여명은 생종 중이라고 밝히면서, “2000년에서야 천왕호 선원들이 실종에서 납북자로 인정되어 487명에 이른다는 경위를 설명했다. 이재근씨는 명섭씨를 19853월 중앙당에서 소환돼 3개월간의 대남연락소 훈련에서 만났다라고 밝히면서, ”납북자 명단에 없는 30여명을 확인했다. 통계로 보면 600여명에 이르고 300여 명이 생존해 있다라고 했다. 오후 3시경에는 세 번 째로 탈북한 남북어부 김병도씨가 동생과 함께 도착해 한국에서의 상봉이 이뤄졌고 또 다른 납북어부였던 진정팔씨도 참석코저 했으나 병환으로 전체 납북어부의 만남은 이뤄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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