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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조선사설]34년 전 납북됐던 납북어부 진정팔(陳正八)씨 한국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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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545회 작성일 04-10-2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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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전인 1967년 4월12일 어선 천대 11호를 타고 서해안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조업 도중 북한에 납치됐던 진정팔(陳正八ㆍ61)씨가 9월 초 북한을 탈출, 월간조선(月刊朝鮮) 취재진과 최성용(崔成龍ㆍ49) 「납북자 가족모임」 대표에 의해 제3국을 거쳐 최근 한국에 귀환했다. 어로작업 도중 북한에 강제 납북됐던 납북어부가 북한을 탈출하여 한국에 귀환한 것은 작년에 귀환한 이재근(李在根)씨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18일 발매된 월간조선 12월호에 의하면 진정팔씨는 북한 탈출 직후인 9월 중순 제3국에서 월간조선 취재진과 만나 『납북 과정에서 북한 경비정으로부터 총격을 받아 갑판장이 현장에서 즉사했으며, 중공에 납치된 것으로 알려졌던 길용호 선원 서일룡(徐一龍)씨는 납북되어 북한에서 살다 1983년경 사망하는 등 길용호 선원 14명 전원이 북한에 납치됐다』고 밝혔다. 또 실종사(失踪死)한 것으로 처리된 백령도의 정철규씨와 배신구ㆍ배신윤 형제 등 세 명도 북한에 납북됐다고 증언했다.

진씨는 정부의 납북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납북어부 10여 명을 비롯하여 북한 억류생활 과정에서 목격한 납북어부 50여 명의 근황을 증언했다(별도기사 참조). 이 중 이선주ㆍ김대곤ㆍ김장훈ㆍ임판길ㆍ김병도ㆍ김영두씨 등은 작년 귀환한 이재근씨가 이미 밝힌 납북어부들이다.

진씨의 증언에 의하면 1968년 11월8일 납북된 수진호 선원이었던 전도민씨는 납북 후 북에서 간첩교육을 받은 후 남파 공작원으로 한국에 침투했다가 북으로 돌아왔는데, 이 과정에서 오른쪽 손가락 다섯 개를 모두 잘렸다고 한다. 1968년 11월7일 납북된 동일호 선원 이태원씨도 간첩교육을 받고 한국에 침투했다가 돌아온 경력자였다고 증언했다.

이밖에도 식량난이 닥쳐 김두익(천왕호 선장)ㆍ이선주(덕산호 선원)ㆍ이태운(동일호 선원)ㆍ임판길(복순호 선원)씨 등 여러 납북어부들이 굶어죽었으며, 김영일(천대11호 선원)씨는 체제비판을 하다 수용소로 끌려가 생사 불명이라고 증언했다.

납북어부 진정팔씨의 존재가 국내에 알려진 것은 지난해 귀환한 납북어부 이재근씨의 증언을 통해서였다. 이씨는 북한에서 목격한 납북어부들을 증언하는 과정에서 진정팔씨에 대해 『함경북도 나남의 광산기계공장 직맹위원장으로 근무했으며 여자처럼 얼굴이 곱게 생겼고, 경상도 말씨를 썼던 것으로 기억된다』고 말한 바 있다. 월간조선 취재진과 「납북자 가족모임」의 최성용 대표는 이재근씨의 증언을 토대로 올 2월부터 중국 내 조선족들을 통해 진씨와의 접촉을 시도했으며, 이 과정에서 진씨가 지난 9월 초 북한을 탈출하여 월간조선 취재진과 함께 제3국의 한국대사관에 귀환을 요청함으로써 34년만에 그리던 가족의 품에 안긴 것이다.

납북 당시 26세였던 진정팔(집에서 부르는 이름은 진영태)씨는 경북 영일군 청하면이 고향으로 납북 당시 고향에 처 박석순(朴石順ㆍ61)씨와 세 아들 형우(炯雨)ㆍ진우(鎭雨)ㆍ철우(陳哲雨)씨가 있었다. 장남 형우씨는 현재 부산광역시 영도구 대평동에 살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납북자 현황에도 진정팔씨 이름이 들어 있다.

월간조선 취재진은 또 1967년 5월28일 승용호를 타고 어로작업 중 북한에 납치됐던 납북어부 이선일(李善一ㆍ사망 당시 51)씨의 사망 사실도 현지 취재를 통해 확인했다. 이선일씨(집에서 부르는 이름은 이성일ㆍ李成一)는 작년 여름 북한을 탈출, 제3국에 은신 중 전북 군산에 살고 있던 가족들과 연락이 닿았다. 이씨는 작년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제3국에서 동생 이광일(李光一)ㆍ누이 이영애(李永愛)씨와 상봉했다. 상봉 직후 이씨는 북에서 결혼한 처와 두 아들을 데리고 나와 한국에 귀환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북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지 못하고 올 봄에 영양실조와 간 경화로 사망했다.

이선일씨는 『화장을 하여 내 뼈를 고향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는데 이광일ㆍ이영애씨의 제3국 상봉을 주선했던 통일부와 국정원 측은 『납북어부의 유골 송환에 정부가 개입하기 곤란하다』면서 유해 송환을 거부하고 있다.

진정팔씨가 증언한 납북어부 현황(가나다순)

▲강여진(금해 11호 선원)
▲권희삼
▲김대곤(천대11호 선원)
▲김동호
▲김두익(천왕호 선장):2~3년 전 굶어죽음
▲김병도
▲김상주(천대11호 선원)
▲김석만(안영호 선원)
▲김영두
▲김영욱
▲김영일(천대11호 요리사):수용소에 끌려가 행방불명.
▲김용만 형제(백령도 어부)
▲김임권(안영호 선원)
▲김장훈(천대11호 선원)
▲김창배
▲김홍일(천대11호 선원):1982년 사망
▲남복이(일명 남재복ㆍ천대11호 선원):사망
▲문경식(풍복호 선원)
▲박동근
▲서봉래(태영호 선원)
▲서일룡(길용호 선원):1983년 사망
▲송래규(금성3호 선원)
▲송말규
▲우재학·우재선 형제(천왕호 선원):동생 사망
▲윤능산(금융호 선원)
▲이선주(덕산호 선원):3년 전 굶어죽음
▲이원재(유풍호 선원):최근 사망
▲이정식(천대11호 선원):사망
▲이태운(동일호 선원):남파간첩으로 한국에 침투했다 북에 귀환
▲임판길(복순호 선원):굶어죽음
▲장길용(천대11호 선원)
▲장영식(천대 11호 갑판장):납북 당시 북한 경비정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즉사
▲전도민(수진호 선원):남파간첩으로 한국에 침투했다 북에 귀환
▲정철규(백령도 어부)
▲정학명(일명 정수봉ㆍ천대11호 선원):사망
▲최명환(천대11호 선장):사망
▲최영근(오대양호 선장)
▲최욱일(천왕호 선원)
▲최종동(천대11호)
▲최창의(태영호 선원):1996년 굶어죽음
▲최효길(천대11호 무전수):사망
▲탁태용
▲홍복동(명규호 선원)
▲여자 선원 2명이 포함된 선원 30명

길용호 선원 명단

박성만(당시 나이 50세·선장ㆍ부산시 남항동), 이덕환(56·갑판장ㆍ부산시 신선동), 이생기(53·선원ㆍ부산시 충무동), 이고태(22·선원ㆍ부산시 대평동), 양효근(48·선원ㆍ통영군 산양면 남평리), 김경남(34·선원ㆍ통영군 산양면 신전리), 김두석(36·선원ㆍ부산시 남항동), 김광섭(49·기관장ㆍ부산시 충무동), 남정식(33·선원ㆍ부산시 대평동), 정이도(30·무전공ㆍ경남 김해군), 정복식(40·선원) 외 3명.

金容三 月刊朝鮮 기자(yskim@chosun.com)
金演光 月刊朝鮮 기자(yeonkwa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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