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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조선]진정팔씨가 증언한 납북어부에 대한 자세한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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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639회 작성일 04-10-2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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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환(천대11호 선장)
함남 북청 과수농장의 트랙터 수리공으로 일하다 사망. 부인이 중학교 교원인데, 장인을 모시고 살았다.
▲장영식(천대 11호 갑판장)
납치 당시 북한 경비정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즉사.

▲김영일(천대11호 요리사) 남조선 생활과 북조선 생활을 대비해서 이야기하다가 수용소에 끌려가 소식이 끊김.

▲최효길(천대11호 무전수)
납북된 것에 좌절하여 술에 빠져 살았다. 신안주 기계공장 조립공, 산소공장 운전공으로 일하다 1981년경 사망. 최씨의 결혼식에 납북어부 김대곤·김장곤씨가 참석함.

▲김홍일(천대11호 선원)
함북 화성군 화성화학 공장에 근무. 얼굴이 통통하고 둥근 편. 키가 작으며 오른쪽 볼에 칼자국이 있음. 1982년경 사망.

▲김상주(천대11호 선원)
함남 부레산 광산에 근무. 경남 통영 출신으로 해병대에서 군대생활을 했다. 성격이 우락부락함.

▲김장훈(천대11호 선원)
평북 성천에 거주. 휴양소 잡부로 근무하다가 농장으로 배속됨. 작년 귀환한 이재근씨의 증언에 의하면 평남 순천군 군자리의 군사혁명사적지 관리원으로 근무했다고 함.

▲김대곤(천대11호 선원)
함북 경성에 살고 있는데 부인 없이 혼자 살았음. 현재 61세 정도. 키가 크고, 얼굴이 넓다. 아랫니에 금니를 3개 해 넣었다. 전기공장에서 경비를 보고 있다. 공장을 찾아오는 전국 각지의 사람들로부터 납북자들의 얘기를 들어 납북자들의 상황을 잘 알고 있음. 이재근씨 증언에 의하면 함북 경성군 애자공장 부근에 살다가 부인이 암으로 죽은 후 주흘온천 부근으로 주거를 옮겼다고 함.

▲남복이(일명 남재복ㆍ천대11호 선원)
평남 순천군 은산농장에 근무하다 노령으로 사망.

▲정학명(일명 정수봉ㆍ천대11호 선원)
평북 개천 트랙터 공장에서 근무하다 사망. 몸이 약하고 대머리였다.

▲이정식(천대11호 선원)
평안도 오료 협동농장에서 농장원으로 일하다 사망. 몸이 좋고 얼굴이 넓었다.

▲장길용(천대11호 선원)
얼굴이 약간 곰보이고 귀가 잘 안들렸다. 평북 개천시 트랙터 부속품 공장에서 일했다.

▲최종동(천대11호)
함북 길주군 주남리에 거주. 불도저 운전수로 몇 년간 일하다 길주 과자공장에서 차를 몰았다. 몸이 둔하고 얼굴에 수염이 많았으며 무서운 인상이었다.

▲서일룡(길용호)
경북 영일 사람. 평양 주변에서 살며 사무원으로 일하다 1983년경 사망.

▲길용호 선원 명단
박성만(당시 나이 50세·선장ㆍ부산시 남항동), 이덕환(56·갑판장ㆍ부산시 신선동), 이생기(53·선원ㆍ부산시 충무동), 이고태(22·선원ㆍ부산시 대평동), 양효근(48·선원ㆍ통영군 산양면 남평리), 김경남(34·선원ㆍ통영군 산양면 신전리), 김두석(36·선원ㆍ부산시 남항동), 김광섭(49·기관장ㆍ부산시 충무동), 남정식(33·선원ㆍ부산시 대평동), 정이도(30·무전공ㆍ김해군), 정복식(40·선원) 외 3명.

▲정철규(백령도 어부) 1967년 북한에 납치. 얼굴이 약간 곰보에 머리털이 듬성듬성했음.

▲김용만 형제(백령도 어부) 두 사람 다 키가 크고 얼굴이 길며, 키가 178㎝쯤 됐다. 6 25 때 월남했던 김용만씨의 형은 拉北되자 불안에 떨었다고 함.

▲여자 선원 2명이 포함된 선원 30명
1970년대 초반, 납북어부 30명이 진씨의 공장에 견학을 왔을 때 목격. 두 척의 배가 납치됐으며, 여자 선원이 2명이 포함돼 있었다고 기억. 한 여자는 당시 나이가 35세 정도.

▲김두익(천왕호 선장)
청진 인근의 과수농장에서 거주하다 2~3년 전 굶어죽음.

▲최욱일(崔旭一ㆍ천왕호 선원)
장인과 같이 납치돼 김책시에 살았으며 최욱일씨 장인은 묘향산 부근에 거주. 키가 크고 얼굴은 갸름한 편이며, 장인은 탄광에서 일했음.

▲우재학·우재선 형제(천왕호 선원)
평안남도 성천군에 거주. 동생은 술을 많이 마셨고, 일찍 죽었음.

▲김동호
19~20세 때인 1969년 무렵 동해상에서 어로작업 중 납치. 고향은 서울. 전동기 수리공, 탄광 굴진공으로 일했다. 평양의 공작원 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쳤다. 사회에 나와서도 군복을 자주 입고 다녔음.

▲김영두·김병도
김동호씨와 함께 납치돼 끌려왔다. 함흥시에 살고 있음(이재근씨도 동일 인물 증언).

▲김창배
나이 55~60세 사이

▲권희삼
양강도 해산에서 살았고, 피복공장에서 일했음. 납북어부 가족들에게 적위대용 천을 싸게 공급해 주어 인심을 샀다.

▲탁태용
성은 탁씨가 확실한데 이름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음. 남파 공작원 교육을 받았고, 평양에서 거주했다. 키가 크며 나이는 60세 전후.

▲송말규
함흥의 모방직공장에 근무했는데 체구가 컸다. 남파 공작원을 위한 특수훈련을 받았음. 성격이 칼날 같아으며 강습 때 납북어부들에게 아침마다 30~ 40분씩 격술을 가르쳤음.

▲박동근
기양 트랙터 공장에서 근무. 나이는 68~70세.

▲김영욱
손풍금을 잘 켜고, 노래를 좋아했음. 키는 보통이고, 살색이 희다. 나이는 52~53세 정도. 평양에 거주. 1968년 6월8일 납북된 풍년호 선원으로 당시 나이 13세. 고향은 강원도 고성.

▲윤능산
혜산 방적공장에 근무. 제주 출신으로 키가 작고, 허약한 체질. 1968년 7월2일 납북된 금융호 선원으로 북제주 우도가 고향. 당시 나이는 17세였다.

▲홍복동
평양 곡산공장에 근무. 키가 보통이고 얼굴은 둥글다. 앞이빨에 금니를 박았음. 1958년 4월28일 납치된 명규호 선원으로 경기 옹진 출신. 납북 당시 20세.

▲이원재
함북 부윤구역 97호 공장의 조립공으로 일했음. 몸이 건강하고, 얼굴이 컸다. 최근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음. 정부 기록에 의하면 1972년 6월9일 납북된 유풍호 선원으로 전남 해남 출신. 납북 당시 32세.

▲서봉래
평남 대한전기공장 조립직장에 근무. 나이 62세 정도. 키가 적고 몸집이 작으며, 얼굴이 뾰족했다. 정부 기록에 의하면 1967년 5월29일 납치된 태영호 선원으로 고향은 충남 태안. 납부 당시 19세.

▲최창의
청진 화학섬유공장에 근무. 얼굴이 넓고 키는 보통 키 정도. 앞에 머리카락이 약간 빠진 대머리다. 1996년 무렵 굶어 죽음. 정부 기록에 의하면 1967년 납치된 태영호 선원으로 충남 태안이 고향. 납북 당시 19세.

▲강여진
함흥 모방직공장에 근무. 머리를 뒤로 넘기고 다닌다. 금해11호에서 어로작업 중 납치됐다고 함. 정부 기록에 의하면 금해11호는 1972년 5월4일 납치됐으며 납북 당시 강여진씨 나이는 16세. 황해도 옹진이 고향.

▲문경식
사망한 이선일씨의 고향 친구. 이선일씨와 함께 납북돼 청진 제강소에서 일하다가 평양에서 공작원 교육을 받았음. 생활 수준이 높아 다른 납북어부들의 부러움을 샀다. 정부 기록에 의하면 1967년 6월5일 납북된 풍복호 선원으로 납북 당시 16세. 전북 군산이 고향이다. 함께 끌려갔던 선원 양회수는 간첩으로 남파됐다가 검거됨.

▲김석만과 김임권
김석만은 키가 작고 나이는 50대. 놀기를 좋아하고 술을 잘 마심. 얼굴이 새까맣게 탔는데 『안영호를 타고 왔다』고 이야기. 김임권도 김석만과 함께 안영호를 타다가 납북됐다. 정부 기록에 의하면 두 사람은 1972년 2월4일 납치된 안영 36호 선원임. 김석만씨는 납치 당시 25세로 고향은 전남 보성. 김임권씨는 납치 당시 31세로 고향은 경남 남해.

▲송래규
경남 남해 출신이다. 성격이 칼날같아서 당 강습에서 지도원이나 과장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소리를 하면 맞서 싸웠다. 보통 키, 눈이 매섭게 생겼으며 함흥에 살고 있음.정부 기록에 의하면 1972년 8월14일 납북된 금성3호 선원으로 납북 당시 35세. 고향은 경북 영일.

▲이선주
3년 전 굶어 죽음. 1968년 6월6일 납치된 덕산호 선원으로 당시 26세. 고향은 충남 당진. 작년 귀환한 이재근씨의 증언에 의하면 함북 경성군의 한 농장에서 트랙터를 몰았다고 함.

▲최영근
오대양호 선장. 오대양호는 두 척이 함께 조업하는 대구리로서 선원은 대부분 경남 통영, 욕지도, 거제도 사람들로 한 마을 사람들이었다고 함. 선원 중에 의준·태준이라는 형제가 포함돼 있다고 증언. 정부 기록에 의하면 오대양 61·62호는 1972년 12월28일 납북됐으며 납북자 명단에 김의준(당시 25세) 김태준(17세) 형제가 포함되어 있음. 두 형제의 고향은 경남 거제도.

▲이태운
1970년경 나남 탄광기계공장에 배치됨. 남파 간첩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았으며, 한국에 침투했다가 돌아온 적이 있으며, 한국에서 살 때 월남에 파병됐었다고 함. 식량난으로 굶어 죽음. 정부 기록에 의하면 1968년 11월7일 납북된 동일호 선원으로 납북 당시 25세. 경북 영덕 출신.

▲임판길
해병대를 제대했고, 호남 출신. 고난의 행군 기간에 굶어 죽음. 정부 기록에 의하면 1968년5월10일 납북된 복순호 선원으로, 고향은 전북 옥구군. 납치 당시 31세. 작년에 귀환한 이재근씨의 증언에 의하면 해병대 출신이고 신의주 펄프공장에 다녔으며 성격이 거칠었다고 함.

▲전도민
수진호 선원으로 동해안에서 납북됨. 남파 공작원으로 한국에 침투했다가 살아 돌아옴. 임진강 침투 과정에서 오른쪽 손가락 다섯 개를 모두 잘렸으며, 나남의 영예군인 학교를 나왔다. 정부 기록에 의하면 수진호는 1968년 11월8일 납치됐으며 전도민씨는 당시 17세.

金容三 月刊朝鮮 기자(yskim@chosun.com)
金演光 月刊朝鮮 기자(yeonkwa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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