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 납북 선원 아내 김애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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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의 할머니 김애란(金愛蘭.79)씨는 50여년 만에 여동생 순실(67).덕실(58)씨를 만났지만 말문을 쉽사리 열지 못했다.
"나, 너네 아재미(형부.평안도 사투리) 보러 왔어." 한동안 말없이 웅얼거리던 金할머니는 북측의 여동생을 앞에 두고 1967년 서해 연평도에서 조업하다 북한으로 피랍된 남편 최원모(崔元模.92세 추정)씨의 생사 얘기부터 꺼냈다.
30여년 전 당시 고기잡이배 선주였던 崔씨는 조기잡이를 나갔다가 선원들과 함께 납북됐다.
이후 선원 가운데 일부는 돌아왔지만 崔씨는 북에 그대로 남아 생사조차 확인할 길이 없다가 이번에 북측으로부터 생사확인 불가능 통지를 받았다.
그래서인지 동생들과의 재회는 처음엔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두 동생이 다 늙은 모습으로 자기 앞에 나타난 것을 깨달은 듯 끌어안고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언니, 우리가 있잖아, 우리가 있는데 아재미 생각은 그만해." 순실씨의 이 말에 金할머니는 "남편이 나를 생각하다 그만 저승길로 간 것 같다"고 말하곤 두 동생의 손을 놓을 줄 몰랐다.
2002.4.28 금강산=공동취재단
"나, 너네 아재미(형부.평안도 사투리) 보러 왔어." 한동안 말없이 웅얼거리던 金할머니는 북측의 여동생을 앞에 두고 1967년 서해 연평도에서 조업하다 북한으로 피랍된 남편 최원모(崔元模.92세 추정)씨의 생사 얘기부터 꺼냈다.
30여년 전 당시 고기잡이배 선주였던 崔씨는 조기잡이를 나갔다가 선원들과 함께 납북됐다.
이후 선원 가운데 일부는 돌아왔지만 崔씨는 북에 그대로 남아 생사조차 확인할 길이 없다가 이번에 북측으로부터 생사확인 불가능 통지를 받았다.
그래서인지 동생들과의 재회는 처음엔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두 동생이 다 늙은 모습으로 자기 앞에 나타난 것을 깨달은 듯 끌어안고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언니, 우리가 있잖아, 우리가 있는데 아재미 생각은 그만해." 순실씨의 이 말에 金할머니는 "남편이 나를 생각하다 그만 저승길로 간 것 같다"고 말하곤 두 동생의 손을 놓을 줄 몰랐다.
2002.4.28 금강산=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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