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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상봉] 납북자(최원모92세)처 김애란79세씨, 납북남편 대신 동생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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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621회 작성일 04-10-26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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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너네 아재미(형부ㆍ평안도 사투리) 보러왔어”
허연 서리가 내린 듯한 백발의 할머니 김애란(金愛蘭.79)씨는 50여년만에 여동생 순실(67), 덕실(58.아명 뽀또)씨를 만났지만 말문을 쉽사리 열지 못했다.

한동안 알아듣지 못할 말을 웅얼웅얼 거리던 김애란 할머니는 북측의 여동생들을 앞에 두고 67년 서해 연평도에서 조업 중 피랍된 것으로 알려진 남편의 생사를 묻기에 급급했다.

30여년전 당시 선주였던 남편 최씨는 연평도 근해로 조기잡이를 나갔다 선원들과 함께 납북됐다. 그후 함께 납북된 선원 가운데 서너 명은 남한으로 귀환됐지만남편 최씨는 북에 그대로 남아 생사조차 확인할 길이 없었다.

북측으로부터 남편 최원모(92세 추정)씨의 ’생사확인 불가능’ 통보를 받은 충격때문에 긴 한숨을 내뿜으며 말을 쉽게 잇지 못했다.

망연자실해 있는 언니를 바라보던 순실씨는 “언니, 우리가 있잖아, 나랑 뽀또가있는데 아재미 생각은 그만해. 우리도 잘 살고 있잖아”라고 말했다.

순실씨의 이 말 한마디에 김애란 할머니는 반세기 동안 감춰왔던 눈물을 흘리며 오열했다.

“나도 날품팔이하며 살았는데, 너희들은 오죽 고생을 했을지 내가 모를까봐” 입속에서 맴도는 듯한 이 한 마디에 세 자매는 얼싸안고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6.25전쟁 당시 27세였던 김애란 할머니는 “아무래도 나를 생각하다 그만 저승길로 간 것 같아. 그래서 제사도 지내고 있다”는 말로 남편에 대한 회한을 털어 버리고 두 동생이 다 늙은 모습으로 자기 앞에 나타난 사실을 깨달은 듯 얼굴을 더듬기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너희 둘을 찾아달라고 신청한 거야. 쪼그만 했던 너희들이 이렇게할머니가 됐으니...” 뒤늦게 허리병까지 얻어 거동조차 불편한 김애란 할머니는 반 세기 전으로 돌아가 동생들을 돌보던 때를 생각하며 두 동생의 손을 놓지 못했다.

2002.4.28 (금강산=연합뉴스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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