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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한 납북어부 대신 아들이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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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820회 작성일 04-10-26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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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29일과 6월10일 납북어부의 아들 李광철(25)씨와 陳龍九(31)씨가 각각 인천항을 통해 한국에 귀환했다. 李광철씨는 1967년 납북된 승용호 선원 李成一씨(2001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사망-月刊朝鮮 2001년 12월호 보도)의 아들이고, 陳龍九씨는 1967년 4월 서해안 백령도 근해에서 조업 중 북한에 납치당한 천대11호 기관장으로서 작년 11월 한국에 귀환한 陳正八씨 아들이다. 납북어부 2세의 국내 귀환은 이들이 처음이다.
광철씨의 부친 李成一씨는 고향이 전북 옥구군으로 납북 이후 함경북도 청진의 제약공장 기계관리공으로 근무했으며, 북한에서 결혼해 부인(49)과 아들 둘이 있다. 광철씨는 맏아들로 축구선수 출신이다.
용구씨의 부친 陳正八씨는 부산이 고향으로 납북 후 함북 청진시 나남 탄광기계공장에 근무했으며, 북한에서 결혼해 장남 용구씨를 포함해 2남2녀를 뒀다. 용구씨는 인민군대를 제대한 후 곧바로 탈북해 부친과 혈육의 정을 나눌 수 있게 됐다. 용구씨는 광철씨와 함께 탈북해 중국에 머물다가 신변 안전을 고려해 광철씨와 별도로 6월10일 인천항을 통해 입국한 것이다.
李광철씨가 입국한 5월29일 아침 인천항 국제여객선 부두에는 李씨의 큰아버지 李光一(55·전북 군산 거주)씨와 「납북자 가족모임」 대표인 崔成龍(충남 서천수협)씨, 2000년 납북어부로는 최초로 귀환한 李在根씨가 마중을 나왔다.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큰아버지와 상봉한 광철씨는 큰아버지 손을 부여잡고 『돌아가신 아버지(李成一)를 대신해서 내가 한국에 왔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광철씨는 작년 말 온 가족이 아버지의 유골을 들고 脫北할 계획을 세웠으나 중간에 발각돼 감시를 받아 왔으며, 결국 단신으로 탈출하여 한국行의 꿈을 이루었다.
광철씨는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내가 죽으면 유해를 고향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남겼는데, 아버지의 유골을 들고 나오려고 무덤을 파다가 이웃 주민의 신고로 붙잡혀 몇 달 동안 감옥 생활을 했다』면서 『아버지의 유골을 가져오지 못해 면목이 없게 됐다. 아버지를 대신해 할아버지·할머니 산소에 술을 올리고 싶다』고 말했다. 큰아버지 李光一씨는 『조카가 납북될 당시의 동생 모습을 빼닮았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國情院, 귀환자 취재 협조 거부

이날 광철씨와 큰아버지의 철조망을 사이에 둔 상봉은 광철씨가 國情院 및 관계기관 조사를 받기 위해 모처로 연행되면서 5분 만에 끝났다. 기자는 광철씨가 도착하기 전날 國情院 측에 광철씨의 입국 사실을 알리고 취재 협조를 요청했으나 國情院은 이를 거부했다.
당일 인천항 국제여객선 부두에서 납북어부 가족 상봉장면을 취재하던 취재진은 『철조망을 사이에 둔 자극적인 상봉 장면이 언론에 공개되면 우리 정부의 체면이 손상될 것』이라면서 『철조망이 없는 곳에서 광철씨와 큰아버지의 상봉 장면을 보도할 수 있도록 5분 간이라도 취재 기회를 달라』고 국정원 측에 수차 요청했으나, 국정원 관계자는 『우리도 돕고 싶지만 상부 지시로 도울 수 없는 입장임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결국 국정원 측의 무성의한 태도로 5월30일자 조선일보 사회면과 5월29일 MBC 저녁 뉴스에는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눈물을 흘리는 광철씨와 큰아버지 李光一씨의 상봉 모습이 보도됐다.
납북어부 두 아들의 한국行은 탈북자들의 연이은 駐中 외국 공관 난입사건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우리 정부의 책임 회피로 납북자 가족모임 대표인 崔成龍씨의 주선下에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광철씨와 용구씨는 지난 5월8일 脫北, 중국 모처에 숨어 있다가 崔대표와 연락이 닿았다. 5월9일 崔대표는 통일부에 두 사람의 脫北 사실을 알리고 이들의 신변보호와 본국 송환을 요청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두 사람이 은신해 있는 곳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요청하여 崔대표는 이를 알려주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崔대표는 『두 사람은 우리 통일부도 이미 소재를 파악하고 있는 납북어부의 아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신병을 인도받아 귀환 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崔대표의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5월15일경 심야에 통일부 관계자는 崔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탈북한 납북어부 아들의 귀환 문제가 통일부와 國情院 고위 라인까지 보고됐는데 정부 측은 현재 중국의 사정이 매우 어려우므로 탈북자들이 自力으로 태국이나 몽골 등 제3국으로 탈출하면 데려오겠다』는 입장을 통보했다.
崔대표는 『납북자 가족을 너무 홀대하는 것 같다. 언론에 이 사실을 알리겠다』고 하자 통일부 관계자는 『외교부와 협조해서 송환하는 방향으로 할 테니 언론에는 알리지 말아달라』고 하고는 소식을 끊었다.
기자가 통일부 관계자에게 사실 확인을 요청하자 『납북어부 가족들의 안전이 중요하니까 우리가 협조 차원에서 접촉하다가 상황이 호전되면 송환을 추진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하는 의견을 전한 것』이라고 답했다.
崔대표는 5월24일 오후 서울 강동구 둔촌동의 납북자 가족모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납북어부 가족 두 명의 脫北 사실을 언론에 알리고 정부 관계부처의 무성의한 태도를 비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귀환 납북어부 陳正八씨와 李在根씨는 『정부는 하루빨리 탈북한 납북어부 가족들을 북한에 끌려가지 않도록 보호해 줄 것과 즉각 한국에 데려 오라』고 요구했다.
정부가 시간을 끌고 있는 동안 中-北 국경지역에 숨어살던 광철씨와 용구씨는 하루가 멀다 하고 한국에 전화를 걸어 『지금 탈북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체포령이 떨어져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 하루빨리 한국으로 보내달라』고 울부짖었다.

『저쪽(국정원) 입장은 우리(통일부) 입장과 다른 것 같다』

통일부 입장은 어떻게 하든 납북어부 가족을 돕는 것이 기본원칙이나 납북어부 가족의 신변을 중국 현지에서 보호하고 숨겨주고 한국 귀환을 하는 것은 통일부 소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통일부 관계자로부터 『우리는 당장 돕고 싶으나 저쪽(국정원)에서 「중국의 상황이 좋질 않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저쪽(국정원) 입장은 우리(통일부) 입장과는 조금 다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국정원 측에 납북어부 가족의 송환 문제에 대한 질의를 하자 국정원 공보실은 『납북어부 가족의 귀환 문제와 관련하여 국정원이 참여한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연 적이 없으며 탈북자나 납북자는 받아들이는 것이 원칙』이라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납북어부에 대한 정부 측의 무성의한 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납북어부 李在根씨가 脫北하여 중국의 청도와 심양의 한국 영사관을 찾아가 수차에 걸쳐 한국 귀환을 요청했을 때, 우리 정부를 대표하는 외교관들은 『밀항을 하든가 알아서 한국으로 가라』, 『당신 세금 낸 적 있어요? 왜 자꾸 국가에 부담을 주려고 그래요』라며 그의 등을 떠밀었다. 陳正八씨를 駐中 한국대사관에 인계하는 과정에서 한국 대사관의 한 외교관은 『참 이해를 못 하겠어요. 북한에 가족을 놔두고 어쩌자고 탈출해 나오는 겁니까』, 『당신들(月刊朝鮮 기자와 납북자 가족모임 대표 崔成龍씨)이 앞으로 3일 동안 陳선생 신병을 더 책임져야 한다는 게 본부의 방침』이라는 등의 妄言을 서슴지 않았다.
광철씨의 아버지 李成一씨의 사례는 더욱 안타깝고 기구한 사연으로 점철되어 있다. 李成一씨는 2000년 여름 북한을 탈출, 중국 연길에서 형 李光一씨 등 남한의 가족과 연락이 닿았다. 당시 통일부는 李光一씨 가족에게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경비 360만원을 지원, 형 李光一씨와 누나 李양림씨가 두 차례나 중국에 가서 동생 成一씨와 재회했다.
成一씨는 간경화로 건강이 매우 악화된 상태였다. 그는 한국으로의 귀환을 망설이던 차에 『인민군대에 나갔던 둘째 아들이 영양실조에 걸려 집에 와 있는데 그냥 두면 죽을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나 혼자 잘 살자고 가족을 두고 한국에 갈 수는 없다. 아들을 몸보신시킨 후 함께 脫北하여 한국으로 가겠다』며 다시 북한으로 들어갔다.
7개월 후 형 光一씨는 『동생 成一씨가 간경화가 악화돼 사망했으며 유해를 고향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북한에서 온 소식에는 『成一씨가 「유해를 화장하여 유골을 한국에 보내달라」고 유언했는데, 화장할 나무가 없어 화장을 못 하고 있다』는 딱한 내용도 있었다.
光一씨와 납북자 가족모임의 崔대표는 상봉비용을 제공했던 통일부에 『成一씨의 유골 송환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통일부 관계자는 『당국과 협의를 했는데 납북어부의 유골을 송환하는 문제에 정부가 개입하기 곤란하니 가족이 수습해 오는 것이 좋겠다』면서 가족과 납북자 가족모임의 요청을 거절했다.
납북어부 및 그 가족에 대한 처리는 2000년 한국에 귀환한 李在根씨 전례가 있다. 당시 李在根씨의 한국 귀환 요청을 받은 權丙鉉 駐中 한국대사(現 재외동포재단 이사장)는 李在根씨 및 그가 북한에서 결혼한 처(金聖姬)와 아들(李成在)에게도 대한민국 국민임을 입증하는 여행증명서를 발급했다. 이 사례에 의하면 광철씨와 龍九씨는 당연히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유권해석이 가능하며, 현지에서 한국 정부를 대리하는 駐中 한국대사관과 통일부, 국정원은 이들의 신변보호 및 한국 귀환에 최선을 다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납북어부 유골 송환 요청을 거부한 데 이어 납북어부 아들들의 귀환 문제를 차일피일 시간을 끎으로써 민간인들이 비공식적인 방법을 통해 한국 귀환을 추진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왜 세금을 내는가」하는 의문이 생긴다. 우리가 낸 세금의 일부는 지금 금강산 관광 보조금 형식으로 金正日의 手中에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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