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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납북자 가족 한서린 세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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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290회 작성일 04-10-26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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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납북자 가족 한서린 세월-③
대다수의 납북자 2세는 연좌제로 앞길이 막혔다는 절망 때문에 대학 진학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기껏해야 중학교를 마친뒤 막노동판 등을 전전했다. 공무원 취직은 아예 꿈도 못꿨다.

71년 1월 납북된 휘영37호 박길윤(65)씨의 형 박동경(67)씨는 연좌제가 풀리기 전인 80년대 이전 납북자 자녀 치고 고등학교를 제대로 나온 예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금은 연좌제가 비록 해제됐다고 하지만 이미 때를 놓친 납북자 가족에게는 중등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한이 아직도 응어리로 남아있다.

휘영37호 황영식(83)씨의 장남 화봉(57.경남 거제시 장목면 대금리)씨의 증언.

"부친 납북 직후 군에서 제대해 돌아와 보니 전교에서 1,2등을 놓치지 않던 동생이 고등학교 입학을 포기하고 있었다. 나는 입학금 때문인 줄만 알고 선주에게서 3만원을 꿨다. 그러나 동생은 아버지 때문에 앞길이 막혔는데 고등학교는 가서 뭘 하냐며 집을 나가 장림유리공장에서 일했다. 나는 공부 잘하던 동생이 너무 아까워 고등학교 졸업장이 있으면 면서기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야단쳤지만 소용없었다. 동생 뿐 아니라 납북자 가족 중 (학교 문 앞에서) 물러선 사람 많다."
72년 12월 납북된 오대양 61호 박두남(69)씨의 아내 옥철순(71.경남 거제시 장목면 농소리)씨는 5남매 중에서 장남만 겨우 고등학교에 보냈고 나머지는 모두 중학교만 겨우 졸업한 뒤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살았다고 말했다.

"장남만은 고등학교에 보내려고 별의별 짓 다했다. 그렇게 피눈물로 키운 장남이 하루는 조심스레 아버지 사망신고를 하면 어떠냐고 물었다. 빨갱이 아들이라 지장이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나는 너 하나 믿고 사니까 아버지 사망 신고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비단 옥씨 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납북자 가족은 자녀의 장래를 위해 혹시 북한에 살아있을지도 모를 남편의 사망신고를 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옥씨의 장남은 국가공무원시험을 쳤지만 아니나다를까 불합격됐고 이번엔 지방공무원 시험을 쳤지만 그마저도 신원조회에 걸려 떨어질 위기에 처했다.

"남편 때문에 면서기도 못한다니 눈앞이 캄캄했다. 그래서 경찰지서에 쳐들어가서 아들 살려달라고, 합격시켜 달라고, 아들 취직 못하면 우린 못산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지서장도 우리 사정이 딱했던지 여기저기 알아보더니 지방공무원 취직은 괜찮다고 해서 결국 면서기로 겨우 들어갔다. 아마 당시 납북자 가족 중에 그 이상 출세한 예는 없을 거다"
지난 72년 2월 납북된 안영35호 공순경(74)씨의 아내 김옥엽(65.부산시 해운대구)씨의 말. "조카들이 찾아와 작은 아버지 때문에 취직을 못한다고 불평을 할 때는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조카들도 취직이 되지 않는 판에 우리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었겠는가"
김씨의 자녀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려 아들은 중학교를 중퇴했고 딸은 초등학교를 겨우 나온 뒤 막노동판을 전전하는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일했다.

67년 납북된 풍복호 선원 문경식(51)씨의 형 문중식(60.전북 군산시 옥서면 선연리)씨는 1남3녀중 막내인 아들(30)이 원래 육군사관학교에 가려고 했지만 납북된 작은아버지 때문에 포기했다는 얘기를 나중에야 아내 석순자(54)씨한테서 전해 듣고 혼자 울음을 삼켜야 했다.

"외아들이 육사 가는걸 포기하고 일반 대학을 졸업한 뒤에 군산비행장에 들어갈 때도 안되면 어떻게 하나 하고 마음 많이 졸였다. 아마 그전 같으면 군산비행장에도 못들어 갔을거다"
납북자가족모임 최성룡 대표는 "연좌제가 89년에 풀렸다지만 요즘도 육사같은 곳에는 납북자 가족의 취직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모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문중식씨와 결혼한 석씨는 "아들이 나중에 외국에라도 나가고 싶어할 때 그때도 신원조회에 걸리면 위장이혼을 하자"는 다짐을 남편으로부터 받아놓았다.

결혼도 납북자 가족이라는 사실을 감추고 해야 하는 처지였다.

문씨 부부는 문경식씨가 납북됐다는 말을 지금도 사위나 며느리한테 해주지 않고 있다. "사위들한테는 그냥 이산가족이라고만 설명하고 아직도 자세하게 말 못했다. 딸들이 시집가기 전에 전화를 하더니 결혼할 사람한테 그런 얘기하지 말라고 당부하더라. 며느리한테도 이런 얘기 못했다"
납북자가족모임은 지난해 11월 국가인권위원회에 납북자 가족들의 인권 침해 사실을 조사해달라고 진정서를 내면서 "87년 1월 납북된 동진호 선원 박광현씨의 아들은 현재 고등학생인데 장래 꿈이 장교이지만 현재 납북자 가족은 장교가 될 수 없다는 내부 규정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장래 꿈을 포기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납북자 가족 중 피해자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만들어지고 있는 것같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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