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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납북자 가족 한서린 세월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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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309회 작성일 04-10-26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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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 가족 한서린 세월[4]
"하루는 팔촌 시누이 아들이 찾아와 '취직하려고 서류를 떼러갔다 빨간 줄이 처있어 못 떼고 왔다. 숙모 아들 때문에 내 신세까지 망친다'며 행패를 부렸습니다. 천금같은 자식 잃고 친척한테까지 미움 받으려니 너무 억울했습니다"
71년 1월 납북된 휘영37호 정완상(51)씨의 어머니 이간심(67.경남 거제시 장목면 대금리)씨는 생떼같은 장남을 잃은 데다 당국의 감시와 연좌제에 시달린 세월을 탓하며 인터뷰 내내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이씨의 남편은 6.25 때 참전한 상이군인이어서 사실상 가장 구실은 2남3녀중 장남인 정씨의 몫이었다. 정씨는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17살부터 배를 타다 2년 뒤 납북됐다.

이씨는 이후 밥 구걸만 안 했을 뿐 거지나 다름없이 살았지만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직계가족은 물론 사돈의 팔촌까지 신원불량자로 낙인찍힌 점이었다. 이 때문에 친척들로부터 외면 당하고 취직도 제대로 할 수 없어 생계유지가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이씨는 막내아들도 연좌제 때문에 직장을 얻지 못하고 막노동판을 전전해야 했다며 "막내아들이 '얼굴도 모르는 형 때문에 취직도 못한다'고 나한테 야단이었다"라고 울먹였다.

그는 상이군인 남편이 연금대상자였지만 납북된 아들 때문에 연금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부에서 받은 건 언젠가 경찰에서 준 밀가루 1포대와 적십자사에서 준 돈 30만원 뿐이었다. "그래서 아들이 납북된 값으로 양복 한벌 사입게 됐습니다"
72년 2월 납북된 안영35호 김두선(67)씨의 아내 송봉심(59.부산시 남구)씨는 "남편이 간첩이라고 해서 식당 잡부 일도 시켜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겨우 직장을 구하면 어느새 형사가 알고 찾아와 납북자 가족이니 뭐니 얘기를 해서 그 직장에 오래 다닐 수 없었습니다. 일을 좀 하려고 하면 형사가 매일같이 찾아와 불러내니 회사에서 좋아할 리 있겠습니까"
직장 뿐 아니라 집을 구하기도 힘들었다. '납북자 가족'이란 말을 듣지 않으려고 이사를 가면 어느새 경찰이 따라와 집주인에게 사실을 알려줘 한 곳에서 오래 살지 못했다고 한다.

납북된 아버지 대신 배를 타서 가족을 먹여살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71년 1월 납북된 휘영37호 황영식(83)씨의 장남 황화봉(57.경남 거제시 장목면 대금리)씨는 "아버지 대신 장남인 내가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선원학원에 다닌 후 배를 타려고 하니 아버지 때문에 선원수첩이 발급되지 않아 겨우 연대보증인 3명을 내세우고서야 받을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원양어선은 타기가 어려웠지만 가까스로 승선해도 다른 나라에 상륙하지 못했다.

황씨는 "원양어선을 타고 일본에 가면 일용품을 사야 하는데 상륙을 못하게 했습니다. 한국 정부에서 상륙 금지령이 내렸다고 하대요. 그러니 남들은 놀러 다닐 때 배 안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나마 타이티섬 상륙은 허락됐는데 대신 시간을 제한하더군요. 내가 간첩도 아니고 죄인도 아닌데 이런 제재를 받으니 참으로 억울했습니다."
역시 휘영37호를 타다 납북된 박길윤(65)씨의 형 박동경(67)씨. "저는 다행히 동생이 납북되기 전에 이미 선원 면허증이 있어 원양어선을 탈 수는 있었지만 상륙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일본에 배가 도착했는데 상륙이 되지 않더군요. 나중에 알고 보니 안기부가 미리 연락해서 막은 것이었습니다."
그나마 원양어선에 탈 수 있었던 사람은 행운이었다. 72년 12월 납북된 오대양 61호 박두남(69)씨의 아내 옥철순(71.경남 거제시 장목면 농소리)씨는 "데리고 있던 시동생이 그처럼 원양어선을 타고 싶어했는데 형 때문에 끝내 타지 못했다"고 전했다.

67년 6월 납북된 풍복호 선원 문경식(51)씨의 형 문중식(60.전북 군산시 옥서면 선연리)는 "80년대 언젠가 택시운전하던 4촌 동생이 외국에 가려다가 신원조회에 걸려 못가게 됐다고 찾아와서 원망을 했다. 그 4촌 동생과는 아직도 감정이 좋지 않다"며 씁쓸해했다.

문경식씨가 타고 간 풍복호 선주였던 최원모씨 아들인 최성룡(50)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는 "우리도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다"고 털어놨다.

납북자 가족은 친척이 취직이나 결혼 등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 화살은 고스란히 자신들에게 날아왔다고 토로했다.

"우린 '죄없는 죄인'입니다."
울분에 찬 문씨의 외침이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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