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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 故 최원모씨 국가유공자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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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2,556회 작성일 09-05-11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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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 6.25때 유격백마부대원으로 활동한 공로 인정
国家報勲処、 6.25と遊撃バエクマブ隊員として活動した功労認める
봉태홍 ボンタエホン icon_mail.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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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가 부친 최원모씨의 국가유공자증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チェソンヨン拉北者家族会の代表が父親チョエヲン某氏の国ユゴンジャジェウン書を見せている。 © 라이트뉴스 ©ライトニュース


납북자 故 최원모(1967년 납북, 당시 57세)씨가 6·25전쟁 이후 납북민간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拉致被害者の故チョエヲンモ( 1967年に北朝鮮に拉致、当時57歳)が、韓国戦争以降、北朝鮮に拉致、民間人としては初めて、国家有功者として認められた。

최원모씨의 아들인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는 최근 국가보훈처로부터 부친이 6.25때 유격백마부대원으로 활동한 공로를 인정받아 부친의 국가유공자 증서를 받았다.
チョエヲン某氏の息子であるチェソンヨン拉北者家族会の代表は最近、国家報勲処から父親が6.25と遊撃バエクマブの乗組員として活動した功労を認められ、父親の国家有功者証書を受け取った。

평북 정주가 고향인 최원모씨는 1910년생으로 남강 이승훈 선생이 설립한 오산학교를 중퇴했다.
ピェオンブク定住が故郷チョエヲン某氏は1910年生まれでナムガンイセウンフン先生が設立したオサンに学校を中退した。

6.25가 발발하자 군번도 계급도 없는 유격백마부대에 참여하여 미극동군사령부 소속 켈로(KLO) 부대에 소속돼 40t급 '북진호'의 함장으로 군수물자 보급과 중공군, 인민군 포로 수송, 부대원과 민간인 대피 등의 역할을 맡았다.
6.25が勃発すると軍番も階級もない遊撃バエクマブ対に参加し、ミゲウクドングンサリェオンブ所属ケルロ( KLO )部隊に所属して40t級'ブクジンホ'の艦長に軍需物資の普及と中国軍、人民軍捕虜の輸送、部隊員と一般市民の避難などの役割を引き受けた。

최씨는 6.25 이후 충남 서천에 정착해 배 세척의 선주가 되었다.
崔氏は、 6.25以降、忠清南道舒川に定着し船の洗浄の船主になった。
1967년 6월 4일 '풍북호' 를 타고 선원 7명과 함께 연평도 부근에서 조기잡이 조업 중 납북됐다.
1967年6月4日'プンブクホ'に乗って船員7人と一緒に、延坪島付近で、早期漁が操業中に北朝鮮に拉致された。
다른 선원 5명은 풀려났지만 최원모씨는 6.25때 유격백마부대에서 활동한 전력이 드러나 억류되었다.
他の乗組員5人は、取り出したいしたが、チョエヲン某氏は6.25と遊撃バエクマブの立場で活動した電力が明らかになり、抑留された。
최성용 대표는 부친이 1970년 북한정권에 의해 처형당했다는 소식을 9년 전에 한 탈북자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한다.
崔成竜代表は、父親が1970年に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北朝鮮)政権によって処刑れたというニュースを9年前に脱北者から聞いたとい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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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가 서울 양재도 시민의 숲에 있는 유격백마부대 충혼탑 전사자 명단 속의 부친의 이름(崔元模)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チェソンヨン拉北者家族会の代表が、ソウルの洋装店は、市民の森の遊撃白馬部隊チュンホンタプ戦死者名簿の中の父親の名前(崔元模)を指で指している。 ©라이트뉴스 ©ライトニュー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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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가 유격백마부대 충혼탑 앞에서 부친의 국가유공자증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チェソンヨン拉北者家族会の代表が遊撃白馬部隊チュンホンタプの前で、父親の国ユゴンジャジェウン書を見せている。 © 라이트뉴스 ©ライトニュース


유격백마부대는 1950년 10월, 38도선을 넘어 북진했던 UN군이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려 철수할 무렵, 평북 정주군과 박천군 일대에서 치안활동을 하던 오산학교 출신 청년들이 주축에 되어 그해 11월 22일 평북 정주군 갈산면 번저리에서 결성하였다.
遊撃バエクマブ台は1950年10月、 38度線を越えて北進していたUN軍が中国軍の人海戦術に押されて撤退する頃、ピェオンブク定住軍とバクチェオン郡一帯で治安活動をしていたオサン学校出身の青年たちが主軸になって、同年11月22日ピェオンブク定住郡ガルサンミェオンベオンジェオリエセオ結成した。

당시 2,600여명의 유격백마부대원들은 무기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열악한 상황에서도 철산반도, 신미도, 압록강, 청천강 하구 등 서해도서지역에서 공산군과 500여회의 교전을 치루면서 3,000여명의 적 사살, 중공군 600여명 생포, 민간인 구출 18,000여명, 철도, 터널, 교량 등 주요시설 파괴 등의 전과를 거뒀다.
当時、 2,600人余りの遊撃バエクマブ隊員たちは武器もきちんと装備されていない劣悪な状況でも鉄山半島、シンミも、鴨緑江、チェオンチェオンガン河口など西海書籍地域で共産軍との500回の約束を経て、 3,000人余りの敵射殺、中国軍600人余り生け捕り、一般市民の救出18,000人で、鉄道、トンネル、橋などの主要施設の破壊などの戦果を挙げた。

이 때 희생한 552위의 영령들에 대해 생존 대원들이 1952년 백령도에서 처음 추도식을 올린 후, 각 처를 전전하며 추도 행사를 하다가 1992년 평안북도 유지들의 뜻과 성금을 모으고 노태우 전대통령이 탑명을 휘호하여 서울 양재동 시민의 숲에 충혼탑을 세웠다.
この時に犠牲にされた552位の英領に対し、生活の乗組員らが1952年の白翎島で最初に告別式をあげた後、各チェオレウル転々とし、追悼行事をしていたが、 1992年に平安北道の維持の意思とは寄付金を集め、盧泰愚戦隊大統領がタプミェオンを揮毫してソウル良才洞の市民の森にチュンホンタプを立て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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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양재동 시민의 숲에 세워져 잇는 유격백마부대총혼탑 © 라이트뉴스 ▲ソウル良才洞の市民の森に立ってつなぐユギェオクバエクマブダエチョンホンタプ©ライトニュース

충혼탑 안내판에는 유격백마부대의 6.25당시 혁혁한 공을 소개하고 말미에 “길가는 손들아!
チュンホンタプ案内板には、遊撃バエクマブ対の6.25当時ヒェオクヒェオクハン球を紹介し、末尾に"ギルガネウンソンデウルア!
잠시 걸음을 멈추고 스무살 안팎 젊은 목숨을 반공 구국에 기꺼이 바친 뜻을 새기고 넋을 기려다오”라는 문구가 씌여 있다.
ちょっとペースを停止し、二十歳前後の若い命を反共救国に喜んで捧げた意を刻む精神ギリェオおくれ"というフレーズが書かれ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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