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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34년간 숨겼다..베트남 첫 납북포로 총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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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2,411회 작성일 09-07-23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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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34년간 숨겼다… 베트남전 첫 납북포로 총살 박성진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ㆍ안학수 하사 ‘월북자’로 분류… 43년만에 ‘국군포로’ 인정
ㆍ“실종 장병들 北에 생존” 17년전 본지서 첫 보도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북한으로 끌려간 안학수 하사가 북한을 탈출하려다 총살된 것으로 확인됐다. 국방부는 이를 뒷받침하는 유력한 증언을 확보하고도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고 월북자로 분류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는 뒤늦게 안 하사를 ‘국군포로 추정자’로 43년 만에 인정했다. 베트남전에서 실종된 파월장병들이 북한에 생존해 있다는 사실은 1992년 경향신문에 처음 보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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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에서 실종된 파월장병 3명이 북한에 생존해 있다는 1992년 2월29일자 경향신문 첫 보도(왼쪽). 이후 5월12일에는 비둘기부대 안학수 하사 등 2명이 추가로 북한에 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국방부는 보도 이후 월남전 실종자를 0명에서 5명으로 수정했다.


안 하사의 동생 안용수씨(57)는 21일 “안 하사가 75년 말 북한을 탈출하다 붙잡혀 총살형을 당했다는 사실이 기록된 기무사령부의 문서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76년 남파됐다 자수한 무장간첩 김용규씨의 진술내용을 토대로 작성된 이 문건에는 안 하사가 북한을 탈출, 북·중 국경선에서 체포돼 평양으로 압송된 뒤 간첩죄로 총살형을 당했다고 기록돼 있다.

안씨는 “당시 기무사는 이 문건을 30년간 열람할 수 없는 비밀문서로 분류했다”면서 “최근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문건을 입수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형이 북한을 탈출하려다 사망한 사실을 알고도 ‘월북자’로 기록된 병적기록을 수정하지 않았다”며 “그간 남파간첩 접선 대상자로 분류돼 온갖 피해를 당한 가족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그동안 안 하사가 67년 3월25일 평양방송에 출연하고 북한의 대남 선전자료 등에 등장한 것을 들어 월북자로 추정했다. 그러나 안 하사의 가족들은 교육자 집안에서 자란 그가 월북할 이유가 없다며 끊임없이 민원을 제기했고 정부는 재조사에 나섰다.

국방부와 통일부, 국정원 직원들로 이뤄진 조사단은 지난해 11월 베트남 현지조사를 통해 안 하사가 1966년 베트남 호치민 인근 붕따우 201이동외과병원 통신병으로 근무하다 9월9일 전역을 일주일 앞두고 외출휴가에서 월맹군에 의해 납치된 후 북한에 인계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확인했다.

합동조사단은 베트남에 있던 북한군이 납치된 안 하사를 북한으로 데려갔을 것으로 추정했다. 당시 베트공은 파월장병 한 명에 대해 3000달러의 현상금을 걸어 놓고 있었다.

안 하사는 납북 후 대남 심리전 요원으로 배치됐다가 75년 말 만주로 탈출하려다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지난 5월19일 안 하사의 육군병적기록부를 공식으로 정정했다. ‘탈영(무단이탈)’에서 ‘탈영(외출 미귀 및 납북)’으로 바꾼 것이다. 이와 동시에 ‘월북자’라고 연필로 썼던 부분은 지워졌다. 또 지난달 열린 제90차 국방부 국군포로대책위원회에서 안 하사를 국군포로 추정자로 관리하기로 의결했다.

‘베트남전 국군포로 제1호’인 안 하사는 이산가족 상봉신청 대상자 명단에 등재할 수 있다. 안 하사의 유해가 송환되면 국립묘지에 안장된다.

국방부는 안 하사의 가족에게 보낸 ‘국군포로 추정자 관리 결정 통지문’을 통해 “안 하사를 월북자로 분류함으로써 오랜 기간 가정의 고통이 심했을 것으로 충분히 짐작되나, 이번 결정으로 마음의 아픔이 조금이나마 해소되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박성진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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