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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국민의 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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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2,315회 작성일 09-08-10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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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의 소프트 파워] ‘국민의 값’


# 며칠 전 태평양을 건너 평양으로 날아간 빌 클린턴이 하루도 채 안 되는 18시간 만에 미국 국적(한국계와 중국계 미국인)의 두 여기자를 구출해 유유히 되돌아가는 장면을 두 눈으로 생생히 보았다. 반면에 서울에서 채 한 시간도 안 되는 지척 거리의 개성에서 억류된 지 130일이 넘도록 석방 소식은커녕 이젠 어디 있는지조차 아리송할 만큼 ‘사실상 방치된’ 대한민국 국민도 있다. 정말 ‘국민의 값’이 다른 것일까.


# 우리는 꼬박꼬박 세금을 낸다. 병역의 의무도 애써 치른다. 나라가 망한다고 난리 법석할 때는 장롱 깊숙이 묻어 놨던 애들 돌 반지까지 꺼내서 바친다. 하지만 정작 유사시엔 보호받지 못한다. 130일이라면 100일하고도 한 달이 지난 것이다. 아무리 남북 관계가 유례없이 경색됐다 해도 이건 ‘방치’나 진배없다. 요즘은 집에서 기르던 개를 잃어버려도 현상금 붙여서라도 어떡하든 되찾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했나. 지금 대한민국 국민의 값은 속된 말로 ‘개 값’만도 못한 것인가.


#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이명박 대통령이 130일이 넘게 북한에 억류돼 있는 개성공단 근로자 유모씨와 최근 북한에 나포된 연안호 선원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는 할 수 있는 모든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도대체 무슨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했다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말로 ‘석방 촉구’를 한 것이 다한 것인가. 한술 더 떠 이동관 대변인은 “수면 위에 무언가가 잘 안 보인다고 수면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움직임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하는데 그토록 수면 아래서 노력했다면 무슨 흔적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았겠나. 이제 와 현대아산 사장을 등 떠밀다시피 다시 북으로 보내본들 무슨 뾰족한 해결책이 나올 것 같지도 않다. 한여름에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언 발에 오줌 누는 꼴’이다.


# “김정일 위원장님께. 저는 2009년 7월 30일 오전 위성항법장치의 결함 및 고장으로 북방한계선을 넘게 된 800 연안호 선장 박광선씨의 맏딸 박미령입니다. (중략) 사고 당일 역시 동해안의 오징어 수확이 어려운 시점에 거듭되는 조업 실패로 경제적으로도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을 터, 분명 근심을 안고 조업에 나가셨을 텐데 기계 결함으로 뜻하지 않게 북방한계선을 넘게 된 저희 800 연안호 선원들을 부디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 주십시오! (중략) 김정일 위원장님! 저희 가족 모두 하루빨리 이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제발 도와주십시오!”


# 납북자 가족 모임 홈페이지에 위의 호소문을 올린 박미령씨는 엄연히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왜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는 것을 제일의 의무로 하는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오징어 잡이의 어려움’까지 호소하며 애원하는 것일까. 그녀가 보기에 대한민국 대통령과 정부는 말로 하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 호소문의 말미에 박미령씨는 이렇게 덧붙였다. “더불어 이명박 대통령님! 저희 연안호 선원 모두 조속한 귀향을 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도 눈에 보이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주십사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김정일 위원장에게는 시시콜콜, 구구절절하게 매달리며 토로하던 말이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단 한 문장이었다. 게다가 ‘눈에 보이는 노력’을 해달라는 서운함이 깔린 질책마저 담겨 있지 않은가.


# 이명박 정부가 언제부턴가 ‘서민’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여당인 한나라당도 따라서 붙인 구호가 ‘하나부터 열까지 서민 편에서’다. 덕분에 지지율이 상승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하지만 정부 여당이 정말 챙겨야 하는 것은 ‘서민’이 아니라 ‘국민’이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이 진짜 해야 할 것은 ‘친(親)서민’이 아니라 ‘친(親)국민’이어야 한다.


2009년 08월 08일 (토) 00:18 중앙일보

정진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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