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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베를린장벽 붕괴 20년 그리고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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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2,108회 작성일 09-11-09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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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1월9일 저녁 9시를 기해 동·서 베를린 장벽과 동·서독간 국경이 개방됐다. 필자는 당시 독일에 유학하면서 역사적 순간을 텔레비전으로 시청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또한 한반도에도 이 장엄하고 위대한 순간은 언제나 올 것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반복하여 던졌다. 이후 20년 동안 독일은 통일을 거쳐 통합의 단계에 있고, 한반도는 여전히 분단의 장벽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1989년 당시 독일의 재통일 여건은 한반도보다 유리하지 못했다. 그러나 우수한 외교적 역량을 바탕으로 옛 소련의 국내적 어려움을 이용하고, 미국의 실질적 지원을 받아 통일을 성사시켰다.

독일의 통일과정은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다. ‘접근을 통한 변화’는 통일을 사전에 준비하는 정책이었다는 평가와 당시 동·서독 간 외적 환경은 통일 가능성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변수로 평가된다. 어떻든 독일은 장벽을 붕괴시켜 통일을 완성하고, 이후 20년 동안 통합을 추진해오고 있다. 양독은 통화·경제·사회 통합 조약으로 ‘하나의 국가(ein Staat)’를 위한 토대를 만들고, 이어 통일조약으로 ‘하나의 국민(ein Volk)’을 만들기 시작했다.

독일의 내적 통합은 세 가지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첫째, 정치적 통합은 통일 협상, 수도 이전 협상, 독일의 나토 가입과 통일 독일군의 숫자 확정, 양독의 선거를 거쳐 1년 이내, 정확하게는 329일 만에 완성됐다.

둘째, 경제적 통합은 장벽 붕괴 당시 약 10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됐으나 아직 완성됐다는 평가는 드물다. 20년 동안 매년 1000억(약 175조원)~1400억유로(약 245조원)씩 약 1조2000억유로라는 천문학적 숫자의 통일 비용투자했다. 그럼에도 통일의 후유증으로 서독 지역의 실업률은 7%이나, 동독 지역은 12.9%다. 동독 지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서독의 71%선에 머물고 있다. 이는 통일 비용 중 상당 액수가 동독 지역의 경쟁력 강화보다 사회보장 분야에 투자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독 지역 주민이 보다 좋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고향을 떠나는 사례가 여전하다.

셋째, 사회적 통합은 심리적 통일, 즉 ‘하나의 독일인’이라는 정체성이 형성됨을 뜻한다. 1989~1990년 통일 당시 약 1세대가 걸릴 것으로 전망됐다. 아직 30년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평가하기는 이르다. 통일 이후 10~15년 동안 강하게 형성됐던 동·서독 주민 간 심리적 갈등은 상당히 완화되긴 했으나, 현 시점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이러한 통일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동독 주민조차 통일 이전 상태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확고한 신념이다.

베를린 장벽은 붕괴됐지만 한반도의 분단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주변 4강의 다양한 입장, 북핵 문제, 북한 인권, 개혁·개방,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이 향후 주요 변수로 예측된다. 독일의 교훈을 상기한다면, 답답하지만 한반도 통일의 실마리는 인내와 더불어 꾸준한 남북 간 교류에서 찾아야 한다. 북한 주민에 대해 투명성을 전제로 인도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대다수 동독 주민이 통일 직후 왜 바나나를 우선 마음껏 맛보려 했는지를 상기해야 한다.

또 서독의 분명한 대동독정책처럼 북한 당국에 대해 인권 문제로서 납북포로 및 강제 납북자 송환 문제 등을 끈질기게 요구해야 한다. 서독은 인권 문제에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 나아가 독일처럼 남북 관계와 주변 4국간 변수로 인해 한반도 통일의 시기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다가오는 통일에 대한 착실한 준비와 대비만이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한반도 통일은 우리들에게 인내를 갖고 ‘눈물과 고통의 계곡’을 통과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이다.<이규영/서강대 국제대학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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