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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상봉> 납북자의 기막힌 이산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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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963회 작성일 04-10-26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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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산상봉 > 납북자의 기막힌 이산상봉(종합)

(금강산=연합뉴스) 공동취재단 = "원망도 많이 했지만 그저 살아 있기만을 바랐
는데...여보, 누구 마음대로 먼저 세상을 떠난거요"
72년 납북된 남편을 기다리며 다섯 명의 자식을 홀로 키워온 강경순(75) 할머니
는 세상을 먼저 떠난 남편 김용철씨가 야속하기만 했다. 그 해 3월 부산에서 오대양
호를 타고 나갔던 남편과 헤어진 지 어언 31년.
27일 금강산에서 열린 제7차 이산가족상봉에서 남편과 만나기를 학수고대했던
강 할머니는 끝내 오열하고 말았다.
그나마 전쟁 와중에 북에 두고온 유일한 혈육인 여동생 강유신(66)씨와 조카 조
영상(43)씨를 만난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애들을 키우느라 막노동, 장사 안 해본 게 없어. 남편이 살아있기라도 해야 나
중에 애들을 보여주고 하소연이라도 할 텐데 이렇게 허망할 수가..."라며 강 할머니
는 울먹였다.
79년쯤 형부의 장례에 참석했다는 여동생 부부가 고마우면서도 "형부는 언니
닮은 사람과 재혼해 잘 살다 가셨어"라는 말에 눈물을 글썽였다.
혈육과 떨어져 홀로 자녀를 키우며 고생한 일, 큰 아들을 잃게 한 화재, 남편을
찾느라 헤매던 일. 강 할머니가 전하는 기막힌 사연에 이들 자매는 이내 눈물로 뒤
범벅이 됐다.
전쟁 와중에 남편을 잃고 월남, 남에서 생활하다 36년전 납북된 외아들 윤경구(
55)씨를 만난 이강삼(76) 할머니는 아들의 모습을 보자 마자 거의 실신하다시피했다.
아들의 얼굴을 이리저리 뜯어보고 어루만져 보지만 한이 북받쳐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 아들과 같이 나온 생면부지의 며느리 홍정숙(53)씨가 "어머니 그만 우세요.
우리는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요"라며 위로했지만 소용없었다.
손자 명남(28), 손녀 영희(23), 경희(20)씨가 밝은 얼굴로 "할머니, 절을 드리
겠습니다"라며 인사를 올리자 그제서야 이 할머니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네가 이렇게 살아 있다니. 죽은 줄로만 알았다. 너 하나만 믿고 모진 풍파를
헤치며 살아왔는데 다른 사람들 올 때 너는 왜 안왔으냐"며 아들을 탓하자 윤씨는
"어머니 죄송해요. 고생 많이 하신 것 다 압니다"라며 안쓰러운 표정으로 위로하기
도 했다.
지난 67년 5월 충남 태안에서 고기잡이배 창성호를 타고 나갔다가 납북됐던 7명
중 5명은 4개월만에 귀환했으나 아들 경구씨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던 것.
이 할머니에게 경구씨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1.4 후퇴 때 인민군 징집을 피해다
니던 남편이 결국 끌려가 사망한 뒤 겁에 질린 이 할머니가 시부모를 북에 남겨둔
채 홀로 등에 업고 연평도로 건너왔던 경구씨였다.
이 할머니는 현재 월 17만여원의 정부보조금을 받으며 충남 태안군에서 보증금
1200만원짜리 전셋집에서 홀로 살고 있다.
손녀 자매는 이 할머니의 보호자로 동행한 오촌 고모 최옥순씨에게 다가가 "옷
장사를 하신다는데 무슨 옷을 파세요. 장사는 잘되시나요"라며 붙임성있게 말을 붙
이기도 했다.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남측의 부모와 피랍자 간의 상봉이 이뤄진 것은 ▲김삼례
-강희근(87년 동진호 갑판장.2차상봉) ▲이후덕-성경희(69년 대한항공 승무원.3차
상봉) ▲이명복-정장백(68년 창영호 선원.5차 상봉) ▲박규순-김태준(72년 오대양61
호 선원.6차상봉) 등에 이어 이번이 5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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