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후납북자 피해가족 연합회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GO

언론보도

 Home

잊혀진 납북의 상처..잊을수없는 아버지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2,760회 작성일 11-10-19 18:00

본문

잊혀진 납북의 상처… 잊을 수 없는 아버지
'KAL기 납치 피해자 가족회' 황인철 대표의 恨
김태성 | ksj@kyeongin.com
▲ '1969 KAL기 납치피해자 가족회' 황인철 대표가 18일 경기도의회에서 열린 '1969년 KAL기 납북 미귀환 11인 생사확인과 송환을 위한 캠페인'에서 돌아오지 못한 피랍자들을 가리키고 있다.
/임열수기자

"납북된 아버지는 분명히 살아계십니다".

1969년 12월 11일 강릉에서 서울로 향하던 국내선 비행기가 북한 고정간첩에 의해 납치·납북됐다. 당시 50명의 피랍자 중 39명은 돌아왔지만 아직 돌아오지 못한 11명은 생사조차 모른다.
이 사건은 '1969년 KAL기 납치사건'으로 불리며, 당시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하지만 1987년 발생한 '김현희 KAL기 폭파사건'으로 'KAL기 납치사건'은 국민들의 기억속에서 점점 잊혀져 갔다. 납북자 가족들만 정부와 국민의 무관심속에 여전히 가슴시린 한(恨)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당시 피랍된 인천 동구 출신의 황원(피랍시 32세·MBC PD)씨는 영동MBC에서 근무하던 중 출장으로 비행기를 탔다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 42년이 지난 지금 황씨의 아들 황인철(45·부천)씨는 얼굴도 기억 못하는 아버지를 잊지 못해 '1969 KAL기 납치피해자 가족회'를 조직, 대표로 활동중이다.

그는 18일 경기도의회에서 100만인 서명 등이 포함된 'KAL기 납북 미귀환 11인 생사확인과 송환을 위한 캠페인'을 시작하며, 아버지를 찾기 위한 험난한 여정에 나섰다.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납북자 가족으로서의 험난했던 시간들을 힘들게 토로했다.

사건 당시 황 대표는 2살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때까지 미국에 출장중인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가 납북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는 정말 큰 충격이었다.

가장을 잃은 황씨 가족에게 남은 것은 고통뿐이었다. 소득원이 끊어진 데다 어머니마저 당시 충격으로 편집성 인격장애를 앓아 어린 황씨 남매는 갖은 고생을 다 해야 했다.

당시 함께 피랍됐다 조기 송환된 납북자들은 황 대표에게 그의 아버지를 '납북돼서도 사회주의를 정면 비판할 정도로 소신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알려줬다.

이런 말을 듣고 자란 황 대표는 당시 아버지의 나이보다 더 어른이 됐지만 부당한 것과 타협하지 않았던 아버지를 닮고 싶은 게 아직도 꿈이다.

최근 가족회는 국제적십자위원회를 통해 납북된 11인의 생사확인 및 송환을 요구하는 의사를 북한에 전달했지만 북측은 "자유의사로 온 것이며, 생사확인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전해 가족들에게 또 한번의 고통을 안겨줬다.

황 대표는 "국민들에게 잊혀져 가는 사건이지만, 가족들에겐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아픔"이라며 "아버지를 꼭 찾겠다. 국민들과 국제사회도 도움을 달라"며 끝내 눈물을 터뜨렸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2013 unite2011.co.kr. Made with love by 사단법인 전후납북자 피해가족 연합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