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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 가족 반발 부른 비전향장기수 송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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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048회 작성일 16-06-0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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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트 주소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8/31/0200000000AKR2015083106160003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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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비전향장기수 북송은 우리 사회가 '빨갱이의 인권'이라는 개념을 음미하게 된 계기였다. 한국전쟁 이후 사상적으로 조금만 의심받을 말을 하기만 해도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혔던 한국에서 '전향하지 않은 사회주의자'라는 뜻의 비전향장기수(非轉向長期囚)는 '진짜 빨갱이'라는 말과 동의어였다. 비전향장기수 송환은 이들의 수구초심(首丘初心)을 받아들일 만큼 한국 사회가 여유로워졌다는 의미였고, '빨갱이'와 결코 어울릴 수 없었던 '인권'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결합된 사건이기도 했다.

1993년 3월 김영삼 정부 당시 이인모(1917∼2007)씨를 북한에 보낸 뒤 7년 만인 2000년 9월2일 비전향장기수 63명이 고향으로 향한 것은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었다. 6·15 정상회담으로 남북 화해 분위기가 한껏 고조됐을 때였다.

하지만 비전향장기수 송환은 뜻하지 않게 납북자와 국군포로 관련 단체의 반발을 불렀다. 특히 1960∼1970년대 납북 어부 가족들의 반발이 거셌다. 그 배경에는 북한에 가족을 빼앗긴 '피해자'이면서도 국가의 보호를 받기는커녕 '혹시 납북 어부가 간첩으로 파견됐을 때 가족이 협조할지 모른다'고 의심한 군사정권의 '연좌제 차별'이라는 역사가 있었다. 납북자 단체의 표현을 빌자면 '유사 빨갱이' 취급을 당한 것. 북한이 1968년부터 무력 도발을 본격화한 가운데 상대적으로 힘이 약했던 군사정권이 '내부 단속'에 치중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연좌제는 1980년에야 공식 폐지됐다.

예상외 반발에 부닥친 정부는 납북자와 국군포로 가족을 '특수이산가족'이라는 범주에 묶어 이산상봉 때 '배려'했지만 이 정도로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박정희 정권이나, 김대중 정권이나 똑같은 대한민국 아닙니까. 왜 대한민국이 연좌제 피해자보다 빨갱이 인권을 먼저 찾아주는 겁니까" 일부 지식인들이 정권 교체에 몰두하는 사이, 전쟁과 분단이 남긴 상처로 신음해온 민초들은 국가의 책임을 묻고 있었다.




[후략]



서울 [연합뉴스 ]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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