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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 겹설움 겪는 대구 윤영자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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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549회 작성일 04-10-25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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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주요뉴스, 정치] 2000.08.22 (화) 19:42 중앙일보

납북자 가족인 尹영자(69.여.대구시 동구 백안동)씨는 지난 이산가족 상봉기간 TV를 켤 수 없었다. 50여년 전 헤어진 부모.여동생의 얼굴이 아른거림과 동시에 1968년 7월 오징어배를 타다 납북된 아들 인천(당시 15세)씨에 대한 그리움이 북받쳤던 것이다.

한번 이별도 감당키 힘든 일인데 尹씨는 이산의 아픔을 두번이나 겪어야 했다. 해방 직전 고향인 황해도 평산군에서 "정신대로 끌려갈 수 있으니 피하라" 는 부모의 권유에 따라 월남한 것이 영원한 이별로 이어졌다.

부산 육군병원 간호사 시절 만난 남편과 결혼, 두 아들을 낳고 남쪽에서 둥지를 틀어보려던 尹씨. 그러나 그녀에겐 큰아들의 피랍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난이 웬수야. 살기가 하도 팍팍해서 국민학교 졸업하자마자 배를 태웠어. 그 배가 그렇게 될 줄 어떻게 알았겠어…. "

생활력이 강하지 못하던 남편 대신 "돈을 벌어오겠다" 며 가덕호를 탔던 아들은 강원도 고성 앞바다에서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30년 넘게 가슴에 묻고 산 아들. 어디 한군데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북한' 이라는 말만 꺼내도 금기시하던 사회 분위기 때문이었다.

"납북이든 월북이든 북한으로 넘어갔으면 하여간 죄인 취급했지. 뭐가 자랑이라고 남한테 떠들겠어. 원통하고 억울할 따름이지…. " 尹씨는 생사확인이라도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체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아야 제사라도 지낼 거 아냐. 이산가족도 저렇게 만나게 해주고 장기수도 송환한다는데 왜 모자는 못 만나는 거야. "

남다른 이산의 한을 온몸에 담고 살아온 지난 세월은 尹씨에게 병만 안겨줬다. 고혈압과 갑상선염으로 거동하기가 고통스럽지만 생계를 위해 하루에 두시간씩 동네 텃밭에서 잡초를 뽑는다. 그녀에게 남은 희망은 단 하나, 죽기 전 아들을 만나는 것이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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